| [ARTICLE] KIAF ART SEOUL 2020 TALK
작가 이명호와의 대담
이명호 작가
박천남 큐레이터
박천남(이하 박):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명호(이하 이):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박: 봄에 뵙고 4~5개월 된 듯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이: 얼마 전에 제가 참여한 창원조각비엔날레가 비대면으로 공식 개막했구요. 개인적으로는 다음 달에 개막하는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의 개인전과 몇몇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 늘 바쁘시군요. 창원조각비엔날레 출품작이 궁금합니다. 어떤 작업인가요.
이: ‘나무 그리고 색_창원 #1’이라는 작품입니다. 기존 ‘사진-행위 프로젝트’를 확장한 개념이지요.
박: 확장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이: 창원 현지에서 진행한 현장작업인데요, 기존 캔버스의 개념을 확장시킨 작업으로 보시면 됩니다.
박: 아직 실제 작품을 보지 못해서 그런지 상당히 궁금한데요.
이: 크게 바뀐 건 아닙니다. 나무 뒤 흰색 캔버스가 홀로그램 화면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기존 프로젝트의 프로세스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인화된 사진 결과물이 아닌, 야외설치작업으로서 의미를 갖는 작업입니다. 창원시내 야외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나무를 골라 현장에 설치했습니다.
박: 유난히 비와 바람이 많았던 여름이었는데, 설치에 무리는 없으셨는지요.
이: 예… 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 분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아무래도 진행에 일부 무리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김성호 감독과 조직위의 적극적인 배려와 지원으로 큰 탈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스태프들이 고생 많았습니다.
박: 다행입니다. 담아낸 나무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무 뒤편에 구조물을 세웠을 테고 또 구조물 전면 가득 홀로그램 패널을 부착했다면 기존 캔버스를 지지하던 구조물과는 다른 물리적 강도와 기술적 보완이 필요했겠는데요?
이: 맞습니다. 저의 다른 프로젝트와는 달리, 전시기간은 물론, 이후에도 설치된 상태로 계속 버티고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특히 기초를 콘크리트로 단단히 했습니다. 나무가 거의 5미터 높이에 달하는 크기라, 기초 위에 에이치-빔을 박고 철판을 부착해서 견고하게 마무리했습니다. 구조물이 3톤 정도의 무게입니다. 아마 센 바람에도 끄떡없을 것입니다.
박: 철판 위에 홀로그램 패널을 부착했으면, 그 과정도 쉽지 않았겠군요.
이: 아, 홀로그램 패널을 부착한 것이 아니라, 철판 위에 홀로그램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마치 회화 작업하는 작가들이 캔버스에 기초 작업으로 젯소를 바르듯 말입니다. 그리고 페인트 위에 우레탄으로 코팅해서 마무리했지요.
박: 역시 치밀하십니다. 그렇게 계획하신 의도라고 할까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홀로그램을 생각하신…
이: 아시다시피 제가 ‘사진-행위 프로젝트’에서 주목하고 줄곧 강조해 온 것이 ‘재현’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물론 이번 작품도 그 연장선상이구요. 다만 이번 작업의 경우는, 비엔날레의 성격을 고려해서, 재현의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었고 또 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동선이나 움직임을 따라 달라지는, 고정되지 않은 방식으로 재현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보고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홀로그램은 이런 저의 생각을 잘 반영하는 기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박: 재현은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 뭐 이런 건가요?
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그걸 사진술이나 사진장치가 가지는 매력적인 요소이자 가능성 또는 한계라고 보는데요. 흔히 심도라고 합니다만, 고정된 피사체와 배경의 이른바 긴장관계가 인화지라고 하는 평면의 지지체 위에서 바짝 얼어붙어 있는 것보다는, 끊임없이 관객과 호흡하며 다양한 긴장관계를 자아내는,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의 장으로서 현장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사진-행위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오는 이유기도 합니다.
박: 흥미로운 개념입니다. 작가는 최초의 생산자이자 감상자, 비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사진-행위 프로젝트’ 작업이 관객과의 소통에 있어 일정한 성취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예술작품의 감상이라는 것은 사람 저마다 지닌 개인적 경험과 감정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현대미술은 하루가 다르게 관객인 수용자와의 소통을 지향하고 있지요. ‘수용미학’의 시대라고 할까요? 롤랑 바르트는 이를 ‘독자반응이론’으로 설명했는데요. 제가 저만의 사진술을 통해 재현이라는 개념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충실히 풀어 놓아도 역시 감상자인 관람객은 저의 객관적 재현방식을 각자의 개인적 경험과 이해의 정도에 따라 각각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늘 열린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박: 렌즈를 개방하듯 마음도 함께 열어야겠지요. 최근 들어서는 설치작업도 병행하고 계시는데요, 이번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개인전에서도 설치작업을 선보이시는지요?
이: 예. 저는 ‘눈’으로 시작한 작업을 ‘렌즈’를 통해 마무리 하지만, 감상자는 ‘눈’이라 부르는 ‘심안(心眼)’을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재현에 관한 저의 방식에 대한 공감대도 시시각각 변하면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작가와 관객에 있어 재현과 감상의 방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작품과 감상자를 둘러싼 세계와 모든 기운에 따라 매번 달리 생성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부분을 전달하기에 효과적인 방식 중 하나가 사진이 작동하는 물리적 과정과 사용자. 혹은 감상자의 심리적 지각과정을 비교, 체험할 수 있는 지금의 설치작업이었습니다. 렌즈와 눈, 공급자와 수용자의 경계를 구분 짓고 서로의 판단과 컨센서스를 유보하기보다는, 서로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확산하는 생산적인 계기로 저의 작업이 기능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 끝으로 관객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짧게 부탁드립니다.
이: 많은 감상자 분들이 그러하시겠습니다만, 저 또한 대상을 재현, 이른바 ‘표상’함에 있어서 저만의 개인적, 사회적 경험과 생각을 두텁게 중첩시키고 그리고 피사체인 대상과 그것이 놓여 있는 시공에 대한 수차례의 답사와 오랜 묵상을 통해 만나고 끌어안고 하나가 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칩니다. 여러분께서도 사진에 대한 고전적 이해와 함께 보다 확장된 사진술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나름의 대중적 기회를 많이 가지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박: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