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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선: Lifelines

보킴

전시 전경 (1)

BHAK(갤러리박, 대표 박종혁)가 보킴 개인전 《생명선: Lifelines》 전시를 8월 23일부터 개최한다. 이번 개인전은 BHAK에서 열리는 보킴의 세 번째 개인전이자 외부 큐레이터 앤디 세인트 루이스의 기획이 더해져 보다 탄탄한 내실을 갖추고 있다.

보킴(Bo Kim, b.1994)은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BHAK 전속작가로 한지, 물감, 그림자, 색의 겹침 등을 통해 내면의 감정을 시각화하는 추상 회화를 선보여 온 작가이다. 이번 전시는 ‘물보다 진하고 참나무보다 강인한’ 가족 간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보킴은 부모의 노화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식’이라는 위치에서 느낀 슬픔, 감사, 연민, 존경의 복합적인 감정들을 마주했다. 그는 이 감정의 겹들을 ‘피’와 ‘나무’라는 상징을 통해 시각화하며, 회화의 층위 속에 세대 간 연결의 리듬을 담아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한국적인 정서와 ‘가계도’라는 서구의 시각 은유를 결합한 그의 접근은, 시대와 문화를 넘나드는 보편적인 가족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작품 속 형태들은 부모의 사랑, 사춘기의 반항, 성숙의 깨달음이라는 정서의 변곡점을 따라 유동적으로 전개되며, 그 자체로 하나의 감정적 족보를 형성한다.

작품에는 한지와 물감, 투명한 층들이 반복적으로 덧입혀져 있으며, 이는 자식의 시선으로 부모를 바라보는 복잡한 감정의 구조를 반영한다. 그림 속 희미하게 남은 윤곽과 잔상은 부모의 손등 위 혈관이나, 세월의 결을 닮은 나뭇가지처럼 보이며, 점차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과 받아들임의 태도를 담고 있다.

기획에 참여한 외부 큐레이터 앤디 세인트루이스는 보킴의 작품에 대해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마음 깊은 곳의 감각을 흔들며 부모로부터 받은 무형의 유산을 사유하게 한다.”라며 “회화라는 형식을 빌린 정서적 고백이자, 시각 피질이 아닌 감정 중추에 직접 도달하는 예술”로 정의했다.

BHAK 박종혁 대표는 “보킴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을 키운 손길에 대한 조용한 존경을 회화로 헌정하며, 동시에 모든 관람자에게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품고 있는 감정의 기억을 꺼내 보길 제안한다.”라며 “관객들은 단순한 시각적 감상이 아닌, 내재된 감정의 잔향과 세대 간의 연결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고 개최 소감을 밝혔다.

전시는 BHAK 전시장에서 9월 27일 토요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서문 “물보다 진하고 참나무보다 강인한”
모든 물리적인 구조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든 인공적으로 생산되었든, 에너지의 발현이다. 꽃의 정수에서 어떤 요새의 성벽에 이르기까지, 구조의 형태는 그 과정에서 쓰인 힘을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회화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그 구성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일반적인 관찰자가 쉽게 인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물론, 여기에는 캔버스에 물감을 더하고, 이것을 사용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여 붓을 쓰는 등, 그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의 물리적인 개입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와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각 작가가 쏟는 막대한 양의 인지적 에너지다. 심지어 그림을 그리지 않는 순간에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들의 지속적인 생각의 흐름은 작업의 최종 구조나 모습에 당연하게 영향을 끼친다.추상적인 작품이 그 구조적인 요소나 미학적인 태도의 측면에서 특히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어느 수준까지 계획된 것인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필요에 따라, 혹은 즉흥적이거나 순전한 우연으로 만들어진 결과인가? 이렇게 집약된 에너지가 순수한 표현으로 전환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보킴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하지만, 이 작품들이 발산하는 그만의 에너지의 기원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들은 우리가 항상 보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습관화된 감상 방식 자체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안다면 말이다.

보킴의 추상 작품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는 마치 하나의 속임수처럼 복잡한 내부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는 한지를 여러 겹 사용하여 투과적인 질감을 가진 유기적인 지형을 만들어 낸다. 이 작품은 우리의 눈이 구분하는 위아래, 내부와 외부를 뒤섞는다. 물감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의 여러 단계에서 사용되는데, 여러 겹의 층위 안에 여러 색상의 영역이 남아 있다가 점차 이 투명한 매트릭스 속에서 드러난다. 그림자가 물리적 존재의 시각적 잔상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킴의 작품 안의 희미한 윤곽과 잔존하는 형태는 볼 수 있는 세계를 넘어 어떤 깊이를 암시하는 울림의 그라데이션으로 나타난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직접 느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물리적이고, 촉각적인 차원을 넘어 (보킴의 작품은 내장을 관통하는 듯한 물질성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기(氣)와 공명하는 영혼의 연장선을 아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회화는 우리 마음의 비시각적 영역을 건드리는 공감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시각 피질을 우회해 뇌의 원초적인 감정 반응을 조절하는 아몬드 형태의 회색 물질인 편도체에 도달한다. 이처럼 보킴의 작품은 인식할 수 있는 시각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깊은 감수성과 연결된 무의식적 충동의 촉매제로 작용한다.

전시 전경 (2)

인간의 신체는 존재하는 여러 구조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구조로, 정교하게 조율된 생물학적 체계와 광범위한 심리적 상태를 아우른다. 수 세기에 걸친 철학적 이론과 수십 년간의 유전학적 연구에도 불구하고, 유전 대 환경 논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가 이분법적인 분류를 거부하고 더 통합된 관점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말이다) 이는 차치하고, 우리가 지금의 우리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부모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들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와 성장 환경의 조건 사이에서, 그들이 우리를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성숙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부모가 투자한 에너지의 실질적인 현현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우리 본질의 불가분한 것으로,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유대감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부모와 연결된다.

물론 이러한 원리는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은 모두 종의 생존을 위해 유대 관계에 의존하며, 심지어 일부 나무들은 지하 균사체 네트워크를 통해 그 자손과 소통하고 돌보는 “어머니”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나무의 장수성과 구조적 짜임새 때문에 나무는 오랫동안 다양한 문화권에서 가족의 후세대가 공통된 조상에서 번식하는 것을 상징할 수 있는 시각적 메타포로 활용되기도 했다. 의미상, 영어에는 나무와 관련된 표현이 많다. 예컨대, 유전적인 정체성을 언급하는 맥락에서 “roots (뿌리)”를 사용한다거나, 자녀가 부모와 아주 닮았을 때 사용하는 표현 중에는 “the apple doesn’t fall far from the tree. (사과는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반면 가족과 관련한 한국어의 관용어 중에는 나무보다는 피의 이미지를 주로 환기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조상을 “혈통”이라고 하거나, 가족 간의 관계를 언급할 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표현이 대표적인 예다.

영어와 국어가 모두 유창한 보킴에게, 여러 은유를 조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그는 이를 일시성과 존재론적 변증법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위한 전략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주제는 그의 추상 회화 작업에서 언제나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최근 이 은유들은 작가 가족의 계보와 관련하여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 보킴 작가의 부모는 한때 건강하고 활기찼지만, 육체적인 퇴화뿐만 아니라 힘과 체력 감소로 인해 점차 나이가 들어감을 절감하고 있다. 부모의 얼굴과 몸의 모양새가 바뀌는 것을 목도하는 것은 작가가 그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그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는 보킴에게 ‘나무’와 ‘피’라는 기호학적 기표에 대한 관심의 개념적 추동이 되었고, 그의 회화 작품에서 구조와 에너지의 체계로 구현된다. 몇몇 작품에서 그는 대담하고 동적인 형태로 이러한 이미지를 표현한다. 예를 들어 작품 <우뚝 솟을줄만 알았던 두 나무가 서로의 팔을 끌어안아, 꼭 마주잡아>(2025)에서는 곡선형 나뭇가지가 공중에서 얽히고 있는데, 여기서 물감을 두껍게 바른 부분은 노거수의 견고함과 부모가 자녀의 청소년기에 제공하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암시하며,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강력한 대조를 만든다. 나아가 작가는 그림의 구성을 패널 여섯 개로 나누어 맥박처럼 작동하는 리듬감을 만들었는데, 이는 그림에 독특한 체성 자극(somatic stimulus)을 불어 넣는다. 다른 작품에서는 잎맥이나 손등에 희미하게 보이는 정맥을 연상시키는, 흐릿하게 그려진 여러 갈래로 나뉘는 구조를 통해 또 다른 형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는 종종 노화에 대한 명확한 징후를 암시한다.보킴의 추상 형태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흐름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로는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날카롭게 느껴진다. 이 형태 안에는 기억의 무게와 그 허무함을 인정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데,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어린 시절의 사랑에서, 회의와 반항의 시기인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 우리 인생에서 부모님이 보여준 희생적인 사랑을 이해하면서, 부모에 대한 존중과 감사함을 갖게 된다. 이처럼 나이가 들수록 부모와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처럼, 작업이 가진 감정적 에너지에 대해 마음을 열 때, 보킴의 작품에 대한 우리의 경험 또한 변화해 간다.

이 회화 작품들은 자비와 배려의 표현으로서, 부모님이 주신 끊임없는 지지와 헌신에 대한 작가의 존경을 담는 바지런한 실천이다. 또한 나아가 자녀를 끈질기게 돌보고 안아주는 모든 부모를 기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보킴에게 ‘나무’와 ‘피’에 대한 상징적인 암시는 보편적인 정서와 함께 깊이 각인된 도상에 지속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는 깊이를 또렷이 감각하게 하고 이를 지각하는 확장된 방식을 유도하는 그의 독특한 매체를 통해 강조된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의 회화 작품은 우리를 조상들과 끊임없이 이어주는 혈통 속에서 세대 간 공감의 연쇄와 모든 가계도(family tree) 속에 잠재된 감정의 층위를 서서히 드러낸다.

글 ㅣ 앤디 세인트루이스

BHAK
서울시 용산구 한남대로 40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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