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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영

선화랑

이채영은 사람이 떠난 자리를 그린다. 가동을 멈춘 공장, 인적이 끊긴 빈 터처럼 곧 사라지거나 이미 사라진, 도시의 화려함 뒤에 남겨진 폐허의 흔적이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오래 머무는 것은 소멸만이 아니다. 잡풀과 덩굴처럼 사라지는 것에 저항하듯 살아나는 존재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다. 작가는 스스로를 “사라지는 것과 남아 있는 것 사이에 머무는 감각을 탐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채영은 덕성여자대학교 동양화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이후 한지와 먹을 기반으로 도시 외곽의 소외된 풍경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다져왔다. 소마미술관, 포스코미술관, 자하미술관, 갤러리 세줄 등에서 여덟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2015년 종근당 예술지상, 2016년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대상, 2021년 인카네이션 문화예술재단 예술상을 받았고 2016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그의 작업은 한지 위에 먹을 쌓는 데서 출발한다. 한지는 먹과 물감이 천천히 스며들며 층을 이루는 재료다. 작가는 옅은 먹과 색을 여러 번 쌓아 올려 화면의 깊이와 밀도를 만든다. 한 번 스며든 흔적은 되돌릴 수 없어 매 순간 화면과 집중해 마주한다. 초기에는 먹을 중심으로 작업했지만, 최근에는 채색을 함께 쓰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작가에게 자연은 그리는 대상이 아니라 시간을 읽는 방식이다. 사람이 떠난 공간에서도 자연은 멈추지 않고 스며들고 자란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빈 터, 균열이 생긴 벽과 방치된 구조물 속에서 사라짐과 생성은 동시에 일어난다. 작가는 이 장면이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라진 것 위에 새 흔적이 쌓이고, 서로 다른 시간들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한다.

 

이번 Kiaf에서 이채영은 ‘ㄷ’자 형태의 코너에 대작과 소품을 함께 건다. 정면에는 빈 터의 풍경을 담은 대표작 ‘텅 빈 공기’가, 좌측에는 ‘이상한 오후’가 놓인다. 우측에는 잡초와 바닥의 균열을 담은 ‘틈’ 연작 소품이 걸린다. ‘텅 빈 공기’는 옅은 먹을 여러 겹 쌓아,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완전히 비지는 않은 공간의 밀도를 담은 작품이다. 작가는 관객이 “작품을 본 직후보다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떠올려”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Artworks

Between, Ink on Korean Paper, 60.6×72.7 cm, 2024

Empty air, Ink on Korean Paper, 148×280 cm, 2021

Strange Afternoon, Ink on Korean Paper, 130×193 cm,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