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리 개인전 《Off-line IMAGE》 포스터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은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2026 OCI YOUNG CREATIVES 선정 작가인 줄리언 리의 개인전 《Off-line IMAGE》를 6월 18일부터 8월 1일까지 OCI미술관 1층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줄리언 리, 48 FRAMED IMAGES, giclee prints, 45×36㎝ each, 48pcs, 2026
전시명 《Off-line IMAGE》는 특정한 의미 체계에 접속되지 않은, 이른바 ‘비워진 이미지’를 가리킨다. 줄리언은 무엇도 지시하지 않고 어떠한 맥락에도 귀속되지 않는 이미지를 탐구해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독일을 오가며 분단과 폭력의 역사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늘 외부이자 주변이었던 그는 하나의 입장이나 해석에 머무는 태도를 경계하며, 작품 활동을 통해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이미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추구하는 ‘비워진 이미지’는 이러한 시선에서 비롯된다.
줄리언 리, Bearing Between the Wheel and the Cycle, positive retouch colours on giclee prints, 110×110㎝, 2020
그렇다면 이미지를 어떻게 비울 수 있을까. 줄리언은 그 단서를 울주 천전리 암각화에서 발견한다. 암각화의 형상들은 의미와 맥락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음에도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아 하나의 해석으로 수렴하지 않은 채 무수한 읽기의 가능성을 품어왔다. 줄리언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개방성이다. 하나의 의미를 확언하기보다 다양한 해석을 포용하는 이미지, 특정한 입장이나 맥락에 귀속되지 않은 이미지. 그것이야말로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비워진 이미지’의 조건이다.
줄리언 리, BULLET POINT, giclee prints, 1 of 6 parts, 20×15㎝; 20×25㎝; 22.5×30㎝; 26.3×35㎝; 32×40㎝; 40×50㎝, 2026
전시장에 들어서면 초록색 배경 위에 다양한 도상들이 부유하듯 펼쳐진 작품 〈C.A.V.E〉와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이미지들 사이의 서사적 연결고리를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구성함으로써 의미의 고정을 경계하고, 관람객이 각자의 해석을 투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는 오랜 시간 단일한 독해에 머물지 않았던 암각화의 특성을 동시대 시각언어로 재구성한 작업으로, 줄리언이 선보이는 ’21세기 암각화’라 할 수 있다.
줄리언 리, C.A.V.E, giclee prints on Hanemühle Baryta, 150×150㎝, 2026
이러한 태도는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통해 보다 구체화된다. 그리드와 체커 보드, 컬러/포커스 차트는 특정한 서사나 기능을 제거한 채 대상 자체를 드러내며, 관습적으로 부여된 의미와 맥락을 비워낸다. 또한 크로마키 컬러인 초록과 파랑은 본래 다른 이미지를 합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배경색이지만, 줄리언의 작업에서는 오히려 화면의 전면으로 등장하며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전복한다.
줄리언 리, FELT SERIES:PAYLOAD No. 1-4, UV print on pure Japanese felt, 31×22㎝, 2026_detail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작곡가 손일훈과 협업한 사운드 작품 〈Portrait〉을 만나볼 수 있다. 손일훈은 줄리언과 전시 방향에 대해 나눈 긴 대화를 바탕으로 피아노 곡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연주자의 해석과 맥락에 따라 음악의 성격과 길이가 유동적으로 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간에 울려 퍼지는 사운드는 전시에 대한 몰입감을 한층 강화한다.
줄리언 리, 48 FRAMED IMAGES_detail
한편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운 48점의 사진 작업은 작가의 관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언뜻 동일한 이미지가 반복되는듯 보이는 이 작업에서, 크로마키 블루 배경 앞에 선 인물은 분명 어떤 동작을 취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얼굴 또한 삭제되어 있어 인물의 정체성과 상황 또한 모호하다.
줄리언 리, Off-line IMAGE, giclee prints on Hanemühle Baryta, 40×50㎝, 2026_detail1
흥미로운 점은 동일한 이미지 아래에 ‘Indicating’, ‘Pointing’, ‘Resuming’ 등 서로 다른 단어가 병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같은 이미지가 단어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는 것이다. 줄리언은 이를 통해 이미지가 품을 수 있는 해석의 다층성과, 특정한 의미로 고정되지 않는 열린 가능성을 드러낸다.
줄리언 리, Off-line IMAGE, giclee prints on Hanemühle Baryta, 40×50cm, 2026_detail2
그렇게 작가는 모든 것을 명확히 규정하고 분류하려는 시도에 의문을 던진다. 수많은 주변을 동등하게 바라보며, 끝내 하나로 치우치지 않는 존재들을 옹호한다. 전시는 8월 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