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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초상

2021.5.17 – 6.12
윤소연

윤소연 작가의 개인전 [사물의 초상]이 광화문 갤러리정에서 5월 17일부터 6월 12일까지 진행된다.

윤소연 작가는 일상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업실로 쓰는 작은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담소를 나누고, 쇼핑을 하고, 때로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외출을 했다가 또 그림을 그리고 택배를 받는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인물이 등장하는 서사적 장면이 아니라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커피잔이나 작가가 자리를 비운 작업실 전경, 말없이 쌓여있는 택배상자들, 구겨진 종이쇼핑백들, 화분에서 윤기있는 잎을 뽐내며 자라는 화초 등 자신을 둘러싼 사물들을 통해 풀어놓는다.

일상의 사물들은 윤소연 작가의 첫 개인전 ‘일상으로의 초대’(2002)로부터 가장 최근 전시인 ‘보통의 시간’(2020)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품세계를 구성하는 중심 모티브였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일상의 사물들을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일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생명력있고 독립적이며 기념비적인 존재로 그려내고 있다. 일상의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는 ‘사물의 초상’이라는 전시제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초상은 인물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사진을 지칭하는데 작가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그린 사물에 초상이라는 단어를 붙여 존재감을 부여하고자 한다. 대상의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초상사진의 형식을 빌려 광목천을 배경에 두르고 일상적 맥락을 소거하여 대상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는 실제로 작업 전 동일한 방식으로 구도를 잡아 수차례 사진을 찍고 인화한 후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고 이를 모델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지만 선뜻 그만두지 못한다고 말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일상의 사물들이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작가의 손길과 사념, 생활의 자취가 담겨있는 농밀하고 섬세한 관조와 묘사, 그리고 투사의 대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윤소연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택배상자와 종이쇼핑백들은 코로나로 인해 배달이 일상화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사물이기도 한데, 작품 속에서는 단순히 주문한 물건을 나르는 실용적 사물이라기보다는 내부와 외부, 일상과 상상, 현실과 욕망, 친밀함과 낯설음이 공존하는 복합적이고 전이적인 공간으로 등장한다. 작가의 고유한 시선과 감성이 투영된 택배상자의 초상 속에서 관객은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친근한 일상의 사물들뿐만 아니라 외부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호기심을 환기시키는 하늘과 숲, 바다도 만날 수 있다.

갤러리정_광화문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2길 12
02 73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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