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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되는가

2021. 7. 2 – 7. 28

실재의 열망 속에서 피어나는 달항아리

달항아리는 문헌이나 여타 서화에 따로 등장한 적도 거의 없다가, 200여 년이 지나서 수화 김환기의 그림과 글에 홀연히 나타났다. 그는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며 이 항아리에서 한국의 미에 눈을 떴노라 고백했다.

강익중_ Moon Jar C25B, 170x170cm, 2008

강익중의 달항아리를 실체가 아니라 “하늘을 담고 마음을 담는 그릇”으로 여기면서, “원래는 둘이었지만 불 속을 뚫고 나와 하나로 합쳐졌다“는 달항아리 제작 과정에서 착안하여 남북 간의 분단을 달항아리를 통해 이어붙이려는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 아래에서 달항아리는 아직도 강익중에게는 “꿈의 달”이다.

고영훈_월출-1, 157.5x130cm, Acrylic on plaster and canvas, 2020

고영훈은 200여 년의 시간을 견뎌온 달항아리, 즉 “시간을 삼킨” 달항아리를 캔버스 위에 재현한다. 그 긴 시간을 빨아들인 항아리가 단순한 물체라고 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영물이 되어 비물질화 되어가는 모습을 페인팅으로 드러낸다. 그는 달항아리가 품고 있는 일루젼, 즉 달항아리의 시뮬라크르(simulacre)를 매우 세련되고 황홀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구본창_Vessel (AAM 01), 154x123cm, C-print, 2011

광택이 제거된 듯한 달항아리를 찍은 구본창의 사진은 백자를 생물, 특히 사람처럼 느끼게끔 한다. 살색으로 처리된 조명의 배경 속에서 드러난 항아리 표면의 질감 때문에 무생물인 도자기가 숨‘결’과 살‘결’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도자기와 그 배경 사이의 느슨하고 흐릿하게 배치되어 있는 경계조차 환경 속에서 생물로서의 긴장을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도자기를 찍었지만, 도자기가 아니게 찍힌 것이다.

김덕용_현 – 달을 품다, 130x122cm, Mixed media carbonization on wood, 2019

김덕용은 달항아리가 품은 시간을 나무를 통해 드러낸다. 그는 나뭇결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 위에 달항아리를 새겨 놓았다. 도자기라는 물성 속에 녹아 있는 시간과 감정을 나무의 결 속으로 파서 심었다. 달항아리라는 기표가 도자기라는 기의(signifie)에서 벗어나서 흘러 다니며, 개념화 되고 있다는 것을 김덕용은 화사하게 보여준다.

김용진_氣로 가득한 器, 106x106cm, 캔버스, 철, 2020

김용진은 철사로 구현해 놓았다. 수만개가 넘는 철사를 꼬아서 하나하나 일일이 심어서 달항아리를 평면스러운 입체로 재현한다., 눈의 착시에 따른 일종의 부조로 도자기 형상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도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달항아리의 이미지가 그 재료적 물성에서 독립하여 스스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김판기_달 항아리, 42x43cm, Ceramic, 2021
이용순_백자달항아리, 55cmx55cm, Ceramic, 2021

2000년도 초반부터 일기 시작한 달항아리 붐은 지금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김판기와 이용순은 실재로서의 달항아리에 다가가려는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200년이 넘는 세월의 뒤로 돌아간 달항아리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최영욱_Karma 20191-17_135x120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최영욱은 달항아리 표면에 갈라진 미세한 틈인 ‘빙렬(氷裂)’에 강렬한 의미를 부여한다. 실타래처럼 엮인 사람들의 인연과 관계 속에서 윤회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를 달항아리 표면을 통하여 보여준다는 것이다. 빙렬은 도자기 표면에 발린 유약의 온도에 따라서 생겨나고 없어지기도 하지만, 세월 속에서도 생겨난다.

브리티쉬 뮤지엄 한국관에 있는 달항아리를 버나드 리치는 “자연스러운 무심함(natural unconsciousness)”이라고 했고, 최순우는 “어리숙하고 순진한 아름다움”, 무심한 아름다움”, “원의 어진 맛”때문에 “넉넉한 맏며느리 같다”고 했다. 유홍준은 “한국미의 극치”라고도 했다. 이런 대부분 표현은 야나기 무네요시가 주창한 민예론의 기본 로직과 언어에 포섭되어 포박되어 있다. 노자의 “대교약졸”에서 비롯된 교졸한 느낌을 바탕으로 한 “무기교의 기교”라는 자연 그대로의 소박한 조형 세계를 미적인 스탠다드로 삼은 전통에서 나오는 표현들이다. 고영훈과 구본창 등의 여기에 전시하는 아티스트들은 이런 무네요시가 정의한 한국적 미의 경계를 넘어가면서 피카소나 마티스가 아프리카의 원시적 탈이나 중세 아라베스크 문양을 통해 새로운 조형적 혁신을 이룬 것처럼 달항아리라는 200여년전의 기물을 형식적으로 수용하여 자신들의 당대적 예술적 비젼을 구현하고 있다.

김웅기(미술비평)

갤러리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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