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28 – 9. 20 | [GALLERIES] Gallery Joeun
오세열
Untitled, Mixed media, 145 x 209 cm, 1996
갤러리조은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오세열의 데뷔 60년을 기념하는 “오세열:Since1965”展을 오는 8월 28일부터 9월 20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초기 인물화에서부터 반(半)추상과 기호, 숫자, 오브제를 결합한 근작까지, 60년에 걸친 예술의 여정을 총망라한다. ‘잘 그리려는 순간 순수성이 사라진다’는 신념 아래, 단순함 속에서 회화의 본질을 추구해온 오세열의 ‘제목 없는 걸작’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순수와 즉흥, 60년 예술의 궤적
오세열의 작업은 언제나 일상에서 출발한다. 병뚜껑과 단추, 수저, 넥타이, 서툴게 오려낸 그림과 글귀 등 아이들의 장난감 같은 사소한 사물들이 그의 손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그것들은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오세열표 시적 울림’을 절정으로 드러내며, 무의식 속 저편에 깃든 동심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때로는 함지박이나 소쿠리가 액자가 되고, 버려진 사물이 작품의 일부가 된다. 그의 회화는 늘 경계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현실과 상상, 일상과 예술을 잇는다.
소재뿐 아니라 그의 회화적 방식 또한 독창적이다. 캔버스 천을 뒤집어 씌운 뒤 유화 물감을 겹겹이 덧칠하고 동시에 기름기를 제거하며,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크랙까지도 일부로 받아들인다. 작업실에서 붓 대신 칼이나 송곳 같은 날카로운 도구를 주로 사용하는 그는 화면을 긋고 갈아내며 자유로운 형태의 스크래치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행위는 오세열의 전 작업을 관통하는 정체성이자 회화적 본질이다. 단순해 보이는 화면 속에는 여러 겹의 색채와 두터운 질감(Material)이 축적되어 있으며, 즉흥성과 솔직함에서 비롯된 회화적 힘이 응축되어 있다. 천진난만한 선과 형상은 ‘아이 같은 어른’이라는 그의 내면을 반영하고, 단색의 배경 아래에는 세월의 흔적이 지층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이 같은 독자적인 회화 세계는 곧 국제무대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1984년 그는 파리 아트페어 피악(FIAC)에서 한국 작가로 유일하게 작품 판매를 기록했으며, 이는 단순한 시장적 성과를 넘어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와 교감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Untitled, Mixed media, 100 x 80 cm, 2015
현재 진행형의 언어, 암시적 기호학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숫자 연작은 그의 예술 세계의 정수를 보여준다. 삐뚤빼뚤하게 반복해 적힌 1부터 10까지의 숫자들은 교실 칠판처럼 익숙하면서도, 한바탕 놀이가 끝난 뒤의 놀이터처럼 덧없다. 오세열에게 숫자는 특별한 상징이라기보다 인간의 삶과 감정 속에 스며 있는 가장 기초적인 언어였다. 한 사람이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언어이자, 시간과 사회적 관계를 기록하는 도구인 숫자는 완결된 기호가 아니라 매순간 반복되는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화면 위에 기록된 숫자들은 단순한 기호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시간을 헤아리는 행위다.
상실과 회복의 초상
그의 또 다른 대표적 시리즈인 인물화는 단순한 형상 안에 깊은 해학과 울림을 담는다. 전쟁과 불안정한 유년 시절의 그림자는 눈,코,귀 등 신체의 일부가 결여된 인물로 형상화되어 등장하지만, 그 위에 입혀진 따뜻한 색채와 치유의 오브제가 절망을 순수로, 상처를 회귀로 전환한다. 색은 닳고 바래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선명히 피어난다. 이런 파동은 기억 속 희미해진 어린 시절과 인간의 서사를 담아낸다.
이러한 ‘상실과 회복’의 변주는 곧 그의 작업 태도로도 이어진다. 모든 작품이 ‘무제(Untitled)’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개 (화가들은) 처음에 붓을 잡으며 작품 구상을 하고 결론까지 연상하며 작업을 하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그래서 시작과 끝이 늘 다르다. 나도 내 작품의 끝을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그의 회화는 삶처럼 예측할 수 없는 시작과 끝을 품으며, 해질녘 놀이터 모래 위에 남겨진 아이들의 ‘제목 없는 걸작’과 닮아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데뷔 60년을 기념하는 회고가 아니다. 시대의 변화를 넘어 ‘순수’라는 가치를 지켜온 예술가의 긴 여정이자, 앞으로도 이어질 오세열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비추는 장이 될 것이다.
갤러리조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55가길 3
02-790-5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