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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 : 시간과 형식의 하이브리드

2021.4.29 – 6.5
백산 김정옥, 이상민, 이헌정, 유의정, 주세균

본화랑은 4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5인의 작가 그룹전 <도자 : 시간과 형식의 하이브리드>를 개최하여 도자 예술을 다양한 장르와 시대적 표현방식의 융합과 공존의 형태로 새롭게 선보이고자 한다. 그룹전에는 전통 도자를 현대적 맥락으로 풀어내는 도예 작가 3인 이헌정, 유의정, 주세균 작가와 유리 매체로 도자의 미학을 구현하는 이상민 유리 작가가 참여하며, 한국 도자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인 백산 김정옥 사기장의 전통 도자기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통과 현대, 시간과 형식을 하이브리드적 개념으로 접근하여 도자를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재해석해보고자 한다.

‘도자 예술의 하이브리드’
21세기에 접어들며 ‘하이브리드’는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으로 등장하여 오늘날 문화 전반의 보편적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두 가지 이상의 이질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는 의미의 하이브리드는 구조적 해체와 장르의 잡종화 현상이 촉발된 포스트모더니즘 부터 점차 혁신적인 예술 개념으로 자리 잡아왔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일종의 예술의 진화 방식으로 채택되어온 하이브리드 개념은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계승해온 도자 예술에서도 목격된다. 도자가 단순한 과거 유물이 아닌 문화적 창조에 이바지하는 전통으로써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전통의 고정 불변적 순수성만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환경에 맞는 다양한 문화와 기술의 혼성적 융합과 변종적 결합을 허용하며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전해져온 청자 기술력과 고려인 문화와 생활양식의 결합을 통해 독자적인 고려 청자가 탄생한 것이나 조선시대 사대부와 서민 사이에 유행했던 이국적 취미가 조선백자의 다양한 형태의 출현에 영향을 주었던 것과 같이 도자는 문화와 양식의 새로운 융합으로 진화해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동시대 예술가들은 전통과 현대의 상호작용 안에서 어떠한 방식들로 도자의 양식과 내용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지 도예가 아닌 예술 장르에서 도자가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각기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알아보고, 더불어 형식적 융합을 넘어 도자에 시간성의 혼합과 공존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하이브리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도자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해보고자 한다.

‘형식의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적 사고는 현대 도예가들에게 자유로운 발상의 전환과 이질적인 것들의 수용과 혼합을 통한 창조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원동력이다. 전통과 현대의 새로운 결합 논리를 통해 도자 예술을 이어가는 유의정, 주세균, 이헌정 작가는 서로 각기 다른 작업으로 도자의 독창적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청화백자 운학문 호, 2018, 백자 위에 금, 유약, Ø 23 x 31(h) cm

우선 유의정 작가는 전통 도자기에 동시대적 현상을 대입하여 도자의 양식적 혼용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전통의 기법을따르되 기존 제작 방식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재료, 문양, 테크닉을 상호 결합하여 전통의 특성을 보여주면서도 현대적 미감이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작가가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청화백자 운학문호나 청화백자 송죽문호는 그러한 복합적 기술 융합을 잘 보여 준다. 작가는 전통 문양의 참조를 통해 도자에 도식적인 문양을 입힌 후 전통적 유약의 기능과 사용 방식을 달리함으로써 이미지와 형상이 흘러내리도록 하여 혼합에 의한 변형을 꾀한다. 또다른 청화백자 시리즈에서는 과거 욕망의 상징성을 갖는 용문과 현대의 욕망의 상징인 보석을 사진 꼴라주 테크닉을 이용하여 독창적 형태의 동시대적 문양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전통과 동시대 문화의 이질적인 결합을 통한 다양한 도자 형식을 실험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한다.

Tracing Drawing PD1802, 2018, Pencil drawing on ceramics, 19 x 19 x 51.5 cm

주세균 작가는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부족한 정보를 통해 백색 도자기를 만들고 불완전한 형태로 수집된 국보와 보물의 이미지를 도자의 원형 구조 위에 연필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불충분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써 작가는 도자기 위에 두 개 이상의 유물 이미지를 결합하거나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 의한 유물의 제한적 형상을 그려낸다. 이때 이미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의도적인 왜곡과 변형이 일어나며 재현된 이미지는 실제 유물의 모습과 차이를 드러내게 되는데 작가는 그 차이를 통해 전통과 현재의 인식간의 괴리를 표현한다. 전통과 그것의 현재적 인식의 충돌로 발생한 어긋남과 그 지점에서 기인하는 불안함을 도자 형상과 이미지 간의 혼합적 교차를 통해 형상화하고 조율과 합의의 과정을 통해 그 간극을 대한다. 이렇듯 작가는 과거의 이미지의 인용과 혼합 방식을 통해 전통 기반에 현대성을 부여하며 도자 예술을 동시대적 맥락으로 확장시킨다.

달항아리, 2019, ceramic, 55 x 55 x 62(h) cm

한편, 유의정과 주세균 작가가 도자의 전통성과 현대성의 조화, 공존, 혼용의 하이브리드적 경향을 보였다면 이헌정 작가는 전통과 전통과 적대적인 것과의 경계를 허물며 상이한 요소의 상호 결합 과정을 통해 새로움을 창조한다고 볼 수 있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우연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도예의 재료로 삼아 창조적 도자를 만들어낸다. 과거에는 표면에 금이 가거나 접합부분이 터지거나 혹은 형태가 일그러진 도자기는 완전한 실패작이며 도예 장인들은 이를 가차없이 깨부순 후 정갈하고 완벽한 도자기 제작에 다시 돌입했다. 그러나 이헌정 작가는 전통적 관점에서의 이러한 흠과 결함에서 기존의 제한적인 미적 관념을 벗어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가 만든 달항아리는 기우뚱하고 상하체의 접합 부분은 매끄럽지 않으며 일부는 금박으로 덧대어져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전통적 도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또다른 차원의 미감을 창출해낸다. 현시대에 재탄생한 달항아리는 기존 전통 체계의 규칙과 질서의 거부와 해체를 통해 더 나은 것을 만들고자하는 이헌정 작가의 실험적 태도가 역설적으로 전통의 새로운 창조를 이끌어낸 예이다.

‘시간의 하이브리드’
도자는 단순히 흙으로 만든 그릇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자는 과거의 정신과 현대의 삶이 만나고 현재의 순간과 미래의 시간이 혼재하는 교차의 장이며 여러 차원의 시간들이 맞닿아있는 매개체로써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관통하는 고차원적 존재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간의 하이브리드란 다른 시간 감각의 공존이라 말할 수 있겠다. 도자에 담긴 이 시간성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백자청화운용문호白磁靑畵雲龍文壺(Joseon Period),
2019, Engraved Glass and framed, 91(W) x 139 (H) x 6(D) cm

시간의 겹으로 응축된 도자기의 아우라는 유리 작가 이상민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의 작업에서 도자기는 축적된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순간이 조우하는 공간이며 시공간을 초월한 선인들과의 교감의 장소로 이해된다. 우선 작가는 도자의 형상을 유리 매체에 구현하기 위해 박물관이나 전문 서적으로부터 도자기 이미지를 수집하고 전통적 레퍼런스를 토대로 모양과 음영의 위치를 분할 계산 후 유리판 위에 밑 작업을 한다. 그 다음 10t 유리판 배면을 그라인더로 연마하여 도자기의 형태와 입체감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몰입한다. 그렇게 완성된 유리는 도자의 형상을 표면 위로 고요히 띄워 올린다. 빛의 반사와 굴절에 의해 드러나는 도자 주변의 여러 겹의 윤곽선은 신기루와 같이 일렁이며 마치 현재의 형태에 과거의 형상이 덧입혀지고 시간과 시간이 중첩되며 혼재하는 듯한 초월적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흙이 아닌 유리에서 탄생한 도자기는 빛의 파동을 통해 과거의 시간과의 만남, 교차, 공존에서 발생하는 무형적 에너지를 전달하며 옛 도자에 누적된 전통과의 새로운 교감을 만들어낸다. 이상민 작가는 전통 도자의 미학을 유리 예술과 결합하고 시간성을 융합하여 새로운 예술성과 형식을 창조하고 있다.

청화백자팔각병, 20 x 36(h) cm

마지막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 기능보유자 백산 김정옥(金正玉) 선생은 9대에 걸쳐 3백여 년 동안 가업을 이어온 도예명가 영남요의 7대 사기장이며 이번 그룹전의 유일한 전통 도예 명장이다. 백산 김정옥 선생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발 물레를 고수하며 유약의 제작, 배합, 가마, 장작까지 전통적인 제작 방식으로 한국 도예의 정통성을 지키고 이어오고 있다. 소박하지만 기품있는 사기장의 도자기는 옛 시간을 상상하게 하며, 하나의 그릇을 완성하기 위해 선인들이 들인 인고의 시간과 그들의 삶 속 깊숙이 녹아있던 그릇들의 수많은 세월을 마주보게 해준다. 조선의 혼과 정신 그리고 시간이라는 무형적 가치는 백산 선생이 만든 현시대의 도자기에 담겨 미래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전달된다. 그의 도자기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이 하나로 이어지며 각기 다른 시대와 역사를 병존시키는 매개체인 것이다. 백산 김정옥 사기장의 도자기는 고고한 형태미는 물론이고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공존성, 지속성, 순환성으로 인해 과거, 현재, 미래에도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으며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더 깊은 아름다움을 전한다.

오늘날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도자 예술이 도태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올 수 있도록 동시대 작가들은 전통과 현대성의 상호 작용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형식들간의 혼합, 전통의 창조적 계승, 도자에 내재된 무형적 가치의 형상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도자 예술의 새로운 존속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전통 도자부터 현대 도자 그리고 유리예술로 표현된 도자까지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한데 모아 도자 예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하고자 하였으며 대중들이 도자를 새롭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기획하였다.

본화랑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299 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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