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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기울기

정병현

갤러리 팔조 대구에서는 정병현 작가의 개인전을 2023년 6월7일부터 8월5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 정병현 ‘a. INCLINATION’ 은 작품 타이틀 Ambiguous Inclination(오묘한 기울기)에서 알 수 있듯이 화면에 보여지는 선들과 기하학적 이미지의 기울기 관계에서 나타나는 모호한 느낌을 담고 있다. 이것은 이전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규칙적, 불규칙적 관계에서 불완전성을 수용하고자 했던 방식의 연장선에 있고, 그것은 조금 더 직관적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한지라는 재료의 포용성은 수 겹 페인팅된 한지를 타투바늘로 뜯어내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색채를 드러나게 한다.

포용으로부터의 미(美)
정병현은 한지(오합지)에 안료를 뿌리고, 칠하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이(색채)를 타투바늘(1~3개로 된)로 뜯어내는 방식을 되풀이하면서 오로지 자신만의 추상 언어를 발전시켜가는 추상 작가이다. 예술의 본령을 찾아가는 정병현의 작업 과정은 철학적 사유와 함께 새로운 시도, 재료와 테크닉의 실험의 단계 – 한지에 타투바늘을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한 기법적 탐구와 모색을 거쳤고, 그는 지금은 물아일체의 단계에 와있다. 가까이에서 세세히 보고도 설명 없이는 작업방식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작업은 독자적이며, 정교하다.

작가에게 한지는 엄마와 같은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실 그의 작업은 한지에 바늘로 수많은 폭력을 가하는 방식이지만, 한지가 가진 촘촘하고 무수한
조직은 바늘의 폭력을 온전히 받아내고 부드러운 보풀로 드러낸다. 모든 과정을
견뎌내는 한지의 강인함과 부드러운 성질은 작가에게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며 이것이 작가가 한지를 선택한 이유이다. 타투는 입히는(심는) 것이지만, 그의 작업에서는 역으로 한지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색채(작가의 마음)를 드러내도록 한다. 이렇듯 한지(오합지)의 마티에르는 안료의 순수성과 강렬함을 충분히 포용하고, 작가의 직관적 감성으로부터 나오는 내적 표현인 것이다.

Ambiguous Inclination – 23001, 2023, Pigment on Hanji, attached to wood panel, ripped off by using tattoo needle, 162 X 130cm

정병현이 한지와 타투방식으로 전개하려는 개념은 인간의 불완전성이다. 그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작품 제작과정에서 규칙적(뜯어내는 방식), 불규칙(밑작업의 페인팅)적인 패턴을 만들며 그것은 착시현상도 불러일으킨다. “이는 삶의 완전성에 대한 갈망보다 오히려 불완전성에서 발생되는 갈등을 받아들인 형태이며, 이러한 제작과정은 삶의 여정에 비유할 수 있고, 인간의 삶들을 돌아보고 새로운 모색을 표현하고자 한다.”고 그는 말한다.
최근 그의 작품은 작품 속 조형 요소를 최소한의 기본적인 형태와 색채로 표현하고 조형원리로 풀어내어 기하학 형태로 나타내고 있다. 이는 그의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인간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인 형태의 연속선상에 있고, 그것은 단순함과 복잡함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작가의 감성과 이성의 이원적 접근방식은 대립의 형식이 아닌 조율의 형식으로 풀어내어 직관적 감정을 극대화하고 내적필연성(작가정신, 메시지, 순수성)을 나타내고 있다

Ambiguous Inclination – 23002, 2023, Pigment on Hanji, attached to wood panel, ripped off by using tattoo needle, 162 X 130cm

감춤과 드러남의 역설, 김석모 | 미술사학자, 솔올미술관장
창작은 먼저 미술을 규정하는 과정이지만 결국은 창작자가 자기를 규정하는 과정이다. 마침표 찍는 결론이 아니라 종결되지 않는 과정이다. 유기적이고 연속적이며 끝나지 않는다.
정병현의 작업은 속박과 해방을 감춤과 드러냄으로 환치한 미학적 절충이다. 창작 동기가 그렇고 작업 방식과 작품 전개의 추이가 그렇다. 시각적 보임새는 꽤나 복합적이지만 과정은 의외로 단순하다. 종이 위에 색이 칠해지고 형상이 그려지면 하나의 화면이 준비된다. 그 위에 다른 한 겹의 종이가 접합된다. 새로운 화면에 색이 칠해지고 형상이 그려지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가장 외부로 드러난 표면은 짙고 어두운 단일 색으로 가려진다. 겹겹의 화면은 견고한 피부가 되고 문신바늘의 빠른 진동으로 종이의 결과 올을 뜯어낸다. 무수한 직선들과 명료한 기하학적 형태가 드러난다

Ambiguous Inclination – 23005, 2023, Pigment on Hanji, attached to wood panel, ripped off by using tattoo needle, 162 X 130cm

화면에 야기된 약간의 착시는 의도와 무관한 결과이다. 오히려 화면 위 상존하는 두 종류의 선(線)적인 요소에 무게가 실린다. 하나는 보여주는 선, 다른 하나는 감추는 선이다. 드러내는 선은 문신바늘이 지나간 흔적, 겉이 손상되자 속이 드러나 만들어진 선이다. 다른 선은 손상되지 않은, 문신바늘의 진동의 피해가 보존된 표면의 선이다. 두 가지 다른 성질의 선은 화면 위에 공존하며 미학적 긴장감을 자극한다. 두 선은 병렬적인 것 같지만 다른 층위에 존재한다. 하나는 표층, 겉, 감춤에 다른 하나는 심층, 안, 속, 드러냄에 속해 있다. 역설적이게도 내적 선은 표면으로 더욱 가시화되고 오히려 감춰진 표면의 선이 심연으로 깊이 가라앉아 있다.
감춤과 드러냄은 실존적 갈등의 해소이자 자기해방의 탈출구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안다, 결국에 드러나고야 만다는 것을, 혹은 드러내야만 한다는 것을. 정병현은 드러내기 위해 가루 난 기억을 색으로 섞어 형태로 위장한 후 한지로 덮었다. 한지는 감추지 않는다. 품는다. 그것은 포용의 품이다. 미술가의 실존적 자아는 문신 바늘의 진동을 타고 한지의 표면을 두드리지만 그것은 파괴되지 않는다. 문신 바늘만 무뎌질 뿐 한지는 도리어 한결 더 부드러운 색을 끌어 올린다. 이런 방식으로 정병현의 화면은 점차 미학적으로 승화되어 간다.

갤러리 팔조
42216 대구광역시 수성구 용학로 145-3, 2층(두산동)
+82-53-781-6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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