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Fill Gallery
2022. 7. 12 – 8. 23
김선두, 강석문, 이동환, 장현주
차의 그윽하고 깊은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수직으로 땅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추위와 바람을 견디어낸 것에서 오는 건 아닐까. 차에 비료를 주는 순간 차 나무의 뿌리는 수직으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수평으로 번식한다. 절실함을 버리고 안락과 타협하는 것에서 차의 깊은 향은 사라지고 온갖 해충을 불러와 이를 구제하기 위해 농약을 살포함으로써 오염된 차가 된다. 그림도 그렇다.
그림의 향기는 우리의 삶을 반성하게 하고 정서를 윤택하게 한다. 감동적인 예술을 창작하는 작가가 깊은 예술적 향기를 지니기 위해선 땅속으로 일자로 뻗은 차 나무뿌리와 같은 단단한 토대가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화의 문제는 이러한 기본기의 부실함에 있다. 작가의 콘셉트와 다양한 경험은 작가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함에도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붓에 관한 기본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화에서 붓은 선이자 형태다. 한국화에서 붓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필력이다. 한국화의 선은 공간예술이자 시간예술이다. 이러한 속성은 한국화의 붓을 선이면서 형태로 존재하게 한다. 필력이 빛을 발하려면 행태가 좋아야 하고 형태가 빛나려면 필력이 좋아야 한다. 이는 마치 운전을 잘 하려면 그 솜씨에 앞서 지리에 밝아야 하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 좋은 붓질은 필력과 형태를 기본으로 구도와 먹색 그리고 발상 능력과 늘 함께 한다.
<뿌리에서 열매까지>전은 뿌리가 곧 열매라는 것을 전제로 붓이 단단한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이는 전시다. 거기에 더해 현대성을 갖춘 작가들이다. 김선두, 강석문, 장현주, 이동환은 한국화에서 요구하는 붓의 단단함과 현대적 감각을 갖춘 작가들이다. 특히 이들은 장지기법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예술 철학과 시대를 읽는 눈들을 가지고 있다.
뜨거운 여름 이들의 치열한 통찰의 결과물인 그림이라는 열매의 향연에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한다.
필 갤러리
서울시 용산구 유엔빌리지길 24
02 795 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