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6 - 2. 8 | [GALLERIES] BHAK
민킴
Installation View of ‘Fractal’ at BHAK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직선적인 것과 곡선적인 것, 그리고 그것들을 컴퍼스와 자, 직각자 등으로 구성해 만든 평면적이거나 입체적인 형태들이다. 이러한 형태들은 다른 것들처럼 상대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항상 그 자체의 본성으로서 아름답다” 플라톤의 『필레부스 Philebus』에 나오는 이 말은 추상미술에 대한 최초의 정의로 거론된다.
이는 사물 세계를 떠나거나 그 형태 너머의 본질을 추출하는 추상회화의 원리이다. 《프랙탈 Fractal》 전시 작가 민킴의 회화는 이러한 추상성의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전통적으로 어떤 사물의 외형을 재현하는 시각 예술의 목적을 갖지 않는다. 전시장을 메우고 있는 민킴의 작업은 어떤 상(image)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선과 면으로만 화면을 구성한다.
이처럼 재현의 영역을 떠난 상태의 작업은 비물질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함을 알려준다. 여기서 비물질의 대상이란, 민킴의 말을 빌리자면 “보지 못한 미지의 것”인데, 그 미지의 영역은 바로 ‘창조성’을 가리킨다. 이전에는 없던 것이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힘과 능력 같은 창조의 현상을 민킴은 회화라는 창작을 통해 감각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이때 작가는 서두에서 밝혔듯이 어떤 대상을 재현하고 모방하는데 주안점을 두지 않고, 점, 선, 면과 같은 형태의 최소 단위에서 탄생하는 형상을 통해 주제를 탐구하는데, 이때 직선과 삼각형은 창조 현상을 표현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Min Kim, Triangular space, Oil on linen, 130 x 97 x 3cm, 2023
민킴의 작업에서 삼각형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상태와 실재하는 유(有)의 상태로 나아가는, 시점에 따라 달리하는 창조의 형상을 보여준다. 이는 삼각형이 탄생하는 조형 원리를 통해 제시된다. 민킴은 어떤 원형(原形)의 최소 단위를 직선으로 설정하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직선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 삼각형을 시각화하여 창조의 첫 형상으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민킴의 작업에서 삼각형은 어떤 존재의 바탕이 되는 원형으로서 무에서 유의 상태로 진화하는 창조의 흐름을 시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작품에는 삼각형이 단독으로 등장하지 않고 두 개 이상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크고 작은 삼각형은 서로 마주 보거나 비껴가거나 겹친 상태로 등장한다. 그들 간의 움직임은 근원적인 생명감에서 나아가 생명체에 내재되어 있는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불완전한 삼각형의 형태를 통해 극대화된다. 민킴은 삼각형을 구성하는 세 개의 직선을 모두 그리지 않는다. 화면에는 캔버스의 프레임에 의해 삼각형의 일부가 잘리게끔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연출은 삼각형의 빗변이 어디서 끝나고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을 낳으며, 화면 안팎으로 여러 모양과 크기로 끊임없이 구획되고 확장되는 삼각형의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체험하게 만든다.
이처럼, 민킴의 회화는 예술가의 시선에 따른 확고한 비전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관객에게 화면에 제시된 형상 너머의 형상을 상상하고 감각하게 유도하여, 평면으로 자리 잡고 있는 회화를 새로운 시공간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의도는 화면을 가로지르는 대각선의 구성을 통해 더욱 잘 나타난다. 사각형의 캔버스 안에서 사방을 가로지르는 사선의 축을 따라가다 보면, 중력을 수용하고 거스르며 상승하고 하강하는 삼각형의 움직임에 따라 역동적인 에너지가 전달된다. 이와 같은 에너지는 생명이 지닌 원초적 힘과 끊임없이 순환하는 생명력을 환기한다.
또한, 대각선의 움직임은 미지의 세계를 상상했을 때 떠오르는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대각선은 서로 비껴가고 충돌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불안함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서로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안정감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렇듯, 삼각형의 도형이 지닌 모순적인 성질들은 캔버스 안에서 서로 끊임없이 대립하고 중화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조화의 단계로 이르는 과정을 마침내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무(無)에서 유(有)’로, ‘혼돈(Chaos)에서 질서(Order)’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창조의 과정을 그리면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민킴의 회화적 여정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은 인류의 본능이다. 예술가의 창작 행위는 그들이 탐험할 수 있는 마지막 영역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세계 너머의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질서와 에너지를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의 본질이자 예술가의 본능적인 갈망인 것이다. 이번 전시 《프랙탈》은 현실을 넘어서며 또한 현실의 근원이 되는 본질을 탐구하는 한 예술가의 지성적이면서도 강인한 열정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B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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