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BHAK
2022. 7. 7. – 8. 6
홍성준
저 멀리 있어야 하는 하늘이 눈 바로 앞에 다가와 있다. 캔버스의 크기에 따라 점차 밝아지는 하늘, 쌓여진 종이에 그려진 맑고 청량한 하늘, 여러 면으로 흩어져 조각나 있는 하늘은 모두 《 레이어 사이를 바라보다 Gazing Between Layers 》에서 선보이는 홍성준 작가의 신작들이다. 본 전시의 작품들은 홍성준이 천착해 온 레이어(Layer, 겹) 형식의 자연 풍경이 회화의 형식적 근원을 이야기하는 작업부터, 축적된 레이어 덩어리와 겹쳐진 레이어 사이에서 감지할 수 있는 시간성에 대한 작가의 최근 관심사까지, 정교하게 드러낸다.
현실의 풍경을 체험하게 하는듯하면서, 허상의 풍경 이미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하는 홍성준의 Layers 연작은 강한 일루저니즘 기법에 의존하며 평면성과 입체감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된 풍경 도상, 말려 올라간 종이면의 모서리와 여기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만들어낸 입체감이 그렇다. 이러한 일루저니즘적 구현은 17세기의 천정화나 트롱프뢰유(Trompe-l’œil)와 같은 전통적인 미술 양식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 속성은 사실상 다르다. 과거 화가들은 붓과 물감만으로 명암법, 원근법, 단축법 등을 구현하여 특정 대상에 환영감을 만들었는데, 홍성준은 작품의 재현 방식뿐만 아니라 작업 방식을 ‘레이어링(Layering, 중첩)’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여 화면의 시촉각적 환영감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홍성준의 그림에는 따라서 시각적으로 포착되는 레이어 말고도, 그림의 안팎에 알게 모르게 가시화된 레이어가 위치하고 있다. 캔버스와의 마찰 없이 에어브러쉬로 화면에 분사된 안료, 캔버스 위에 덧씌워진 한지와 천 등의 배합, 캔버스 바깥으로 새어 나온 채로 응고된 물감의 흔적, 캔버스 뒷면에 칠해진 형광색이 벽면에 반사되어 비추는 캔버스 뒷면의 네온 빛 등. 다양한 재료와 도구가 동원되어 쌓여진 레이어의 표면은 퇴적된 지층과 같은 시간 감각을 구성한다. 이러한 측면은 과거를 회상하는 느낌을 일으키는 흑백 그림 Study Layers 40, 41, 42와, 그라데이션이 적용된 한지를 쌓아 응축된 레이어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설치작품 Condensed Layer(Wave_1), 시간의 거리와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크고 밝게 표현된 Layers of the air 6-1,2,3,4,5,6, 에서 잘 드러난다.
이렇듯, 이번 《레이어 사이를 바라보다》에서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가시적, 비가시적 레이어는 회화의 물성과 허무함을 은유하는 동시에 시간의 레이어(겹)로서 설명될 수 있다. 여기서, 레이어 사이를 유동하는 시간의 형태는 눈에는 보이진 않지만 작품 내외부로 스며들고 확장하는 크고 작은 에너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현상들을 레이어 사이로 실어 나르고, 같은 시간의 겹을 살아가는 우리를 예술적 소통의 장으로 초대한다.
임소희 BHAK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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