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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 날 것으로서의 회화

2021. 10. 6 – 11. 1
김명진

김명진은 그의 자전적인 몽상과 서사를 화폭에 온갖 회화적인 요소로 버무려서 우리를 한편의 기괴하고도 즐거운 문학작품과도 같은 이야기로 이끄는 특별한 작가입니다.

그의 그림은 드로잉과 낙서, 일러스트의 경계가 지워져 있습니다.
화면 위를 속도감 있게 떠도는 온갖 흔적들은 모종의 서사를 만들어 내고픈 충동 사이에서 분주하며 이 자유롭고 거의 날 것으로서의 그리기가 회화 본연의 힘을 보여줍니다.

그는 ‘Edgewalker ‘라는 연작을 통하여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내면 세계를 펼쳐보입니다.
‘Edgewalker’ 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설레임과 두려움이 뒤섞인 첫걸음을 걷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삶의 평범한 순간들은 순식간에 전혀 다른 공간이 되어 펼쳐지고, 그는 깨어있는 감성으로 어떤 마법과도 같은 강렬한 힘으로 우리를 어떤 미지의 몽상으로 인도합니다.

작가는 2016년 마이애미 아트주간에서 세계적인 미술지인 Artsy에 ‘50명의 꼭 봐야하는 작가’로 선정되었고, 2016년과 2017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에서 우수작가로 선정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김명진_Edgewalker_oilpastel and acrylic on canvas_116.8X91cm_2021

김명진 : 날 것으로서의 회화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한국 화단에 그리기가 유행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그리기, 집요한 그리기, 아찔하고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과 무한한 시간을 잡아먹는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오로지 그린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자족하는 그런 그림들이 번성한다. 자신을 가혹하게 혹사 하는 그리기, 천형 같은 그리기, 목적이나 목표 없이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현재의 순간을 지속시키는 회화가 그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시간에 탐닉 하는 욕망이자 동시에 이미지 괴물의 시대에 맞서 여전히 회화만의 매력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또한 불안과 고독이 깊게 스며들어있다. 고독한 개인의 일상에서 번성하는 무수한 상념과 의식/무의식의 지층을 오고가며 건져 올리는 온갖 도상들의 혼재, 그리고 상상력과 환상, 엽기성으로 가득한 그림이 그렇다. 사회나 현실과의 연결고리나 소통의 출구를 쉽게 찾기 어려울 때 작업은 거의 자폐적인 회로 속에서 춤춘다. 그러나 그 지독한 그리기의 몰입은 역설적으로 내가 아직도 여기에서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다는, 한 존재로 살아 있다는 무언의 항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회화는 아날로그적이다. 영상이 보여주는 비물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질감과 촉각적인 것이 회화이고 몸으로 생각하고 반응하고 느낀 것을 몸으로 그리는 것이 회화다. 그래서 그림이란 세계에 관한 육체적 기록이다. 사회나 체제로 귀속되기를 거부하는 생생한 몸의 증거이자 기록이다. 유일무이한 개인성의 토로이다. 회화는 인간이 자신의 몸으로 세계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탁월한 통로’이다. 미술은 탈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지 않은가? 그 같은 그리기의 중심에는 드로잉이 자리하고 있다. 드로잉은 손의 움직임, 정서와 감정의 움직임을 신속하게 담는다. 상상력을 빠르게 휘발시킨다. 상상력이란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바슐라르)이다. 드로잉이란 최소한의 재료를 가지고 자신의 몸 전체를 사용하는 그리기, 쓰기이다. 그것은 기본적인 이미지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여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능력이기도 하다.

김명진_Edgewalker_oilpastel and acrylic on canvas_130.3X162.2cm_2021

김명진의 그림은 드로잉과 낙서, 일러스트의 경계가 지워져 있다. 그것은 온통 ‘그리기’의 흔적으로 자욱하다. 그런데 그 그리기가 무척 독특하다. 환상적이고 엽기적이면서도 도발적이고 대담하고 그러면서도 화면전체를 비상한 기운과 흥미로 채우고 있으며 날 것 그대로의 활기를 대담하게 보여준다. 거의 직관에 의한 그림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미술이란 직관적인 것이다. 훈련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자잘한 터치들과 무수한 기호, 형상, 문자와 숫자들로 빼곡한 화면은 어둡고 습한 감각을 건드린다. 이 그림은 기존 작가들의 작업방식에서 조금은 떨어져 나와 거의 자발적이고 즉흥적인 방식에 의해 그려지고 있다. 다분히 비학습화 된 그림, 반제도적인 그림이다. 조형적인 구성이나 힘에서 아쉬움은 있지만 자유롭고 재미있으며 보는 이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마음과 몸에서 자연스럽게 풀려 나오는 낙서나 드로잉으로 내적인 세계를 기호화하거나 세상의 모든 로고들과 상징을 조합하고 병렬해 자신만의 기호의 왕국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기존에 통용되는 문자나 언어와는 또 다른 시각적 언어, 음성들 말이다. 그것은 기존의 소통체계와는 다른 새로운 소통언어에 대한 욕망을 반영한다. 관습적인 모든 기호, 언어에 저항한다. 그것을 지우고 다른 코드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

김명진_Edgewalker_oilpastel and acrylic on canvas_130.3X162.2cm_2021

물감 자체의 질료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이 모종의 이미지로 나아가려는 사이에서 진동하는, 칠해지고 뭉개진 자취, 조심스레 그려진 형상들과 문자나 숫자. 작게 분절된 선, 점, 터치들이 모여 영감으로 뒤척이는 자신의 내면을 거침없이 토로하고 있다. 신속하고 부지런히 화면을 휩쓸고 지나간 흔적은 잔해처럼 남아 그 화면 앞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작가의 몸과 정신을 거침없이 발설하는 것이다. 그 자리가 생생하다. 화면을 채운 여러 흔적들은 김명진이란 한 존재의 의식과 무의식을 채우고 있는 거대한 그림자로 보인다. 몸으로부터 절단된 얼굴, 무엇인가가 잔뜩 쏟아져 나오는 입, 동물의 형상, 원과 점, 끼적거린 선, 정신 없이 날아다니는 부호들, 부유하는 성기들로 혼재된 화면이다. 특히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성기는 반복강박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쾌한 경험의 계속적인 반복을 반복강박이라고 하는 데 그것은 의식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흥분에 대해 생긴 마음의 상처, 경악에 의해 생긴 것이다. 한편 그것은 잠재된 성욕, 성충동과 결부된다. 작가는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만들어내는 근원적 힘으로서의 충동을 반복해서 형상화한다.

김명진_Edgewalker_oilpastel and acrylic on canvas_ 90.9X72.7cm_2021

화면 위를 속도감 있게 떠도는 온갖 흔적들은 모종의 서사를 만들어 내고픈 충동 사이에서 분주하다. 아마도 즉흥적으로 그려나갔을 이 그림은 의식의 통제보다는, 거의 무의식에 의존해서 자신의 내면에 쌓여있던 그 무엇인가를 배설하고 토해내는 행위에 유사해 보인다. 그래서 그림은 낙서에 가깝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원초적인 그리기를 닮았다.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그리기의 에너지로 충만한 뜨거운 그림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번지고 이를 자동적으로 받아서 도상과 기호들로 출력시키는 그런 그림이라는 생각이다. 동일한 형상, 기호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지속적으로 붓질이 표면 위로 이동하고 있으며 온통 떨어대고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우리의 심리적 현실 속에서 명백하게 활동하면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표면적인 의식에는 떠오르지 않는 것이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꿈이 아니라 그 꿈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 어떤 이유로 인해,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마음의 영역이 무의식인 것이다. 알다시피 내면화된 금지와 억압이 있는 곳에 무의식이 생겨난다. 김명진의 그림은 무의식이라기보다는 잠재의식의 시각적 외화에 가까워 보인다. 의식함이 없는 무의식에 반해 잠재의식이란 참의식의 밑에 억압되어 있으면서도 항상 의식화되는 것을 지칭한다. 망각되어 있는 의식이 잠재의식이다. 그러니 김명진에게 그림 그리기란 자신의 잠재의식이 분출 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유쾌하게 감행한다. 마치 방언을 하듯이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시각화하고 유출시키려 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방사나 사정에 해당한다. 그는 캔버스 화면에 곧바로 그려나간다. 밑그림 없이 자신이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발산한다. 오로지 자신만의 이야기를 토해내려 한다. 나는 이런 태도가 좋다. 이 자유롭고 거의 날것으로서의 그리기가 지나치게 정형화되고 틀에 사로잡힌 요즈음 그림과는 다른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백 같은 회화, 원초적인 그리기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명진_Edgewalker_oilpastel and acrylic on canvas_ 90.9X72.7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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