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8 - 12. 9 | [GALLERIES] Hakgojae Gallery
박광수
박광수는 198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숲과 자연을 사랑했던 소년은 화가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청년 작가 중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면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박광수 작가의 예술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요약은 가능하다. 첫째, 박광수 작가는 회화를 통하여 과학과 과학주의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를 명백히 드러내고자 한다. 과학은 진리를 구성하는 학문이다. 이에 반해 과학주의는 과학에 대한 맹신을 뜻하며, 과학을 위해서 희생되는 사안, 가령 인간과 자연의 희생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가리킨다. 둘째, 세계는 다툼(datum)과 팍툼(factum)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툼은 ‘deity’ 신성(神性)의 어원으로서 신이 선물한 자연과 자연의 이치를 가리킨다. ‘공장(factory)’의 어원인 팍툼은 인간이 자연을 이용해서 제작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다툼과 팍툼 사이의 완벽한 조화와 균형이야말로 최상의 문명(문화)이며, 우리는 절대로 다툼, 즉 자연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작가의 거시적 주제이다. 셋째,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떨어져나와 분리된 존재(ek-sist)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로 이어진 존재(in-sist)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은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인연과 필연으로 모두가 서로 이어져 있다. 전자를 위하여 고대 동양에서는 천인지제(天人之際)의 개념을 제시했으며, 후자를 위하여 인의예악(仁義禮樂)의 가능과 한계를 설정했다.
박광수 PARK Gwangsoo, 초원 Grassland, 2023, 캔버스에 유화 Oil on canvas, 116.8x91cm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구리와 손》이다. 다소 엉뚱한 조합으로 보이는 두 단어에 실은 엄청난 뜻이 내포되어 있다. ‘구리(銅, copper)’와 ‘손(手, hand)’은 문명의 시원과 과정에 대한 은유이다. 첫째, 구리의 영어단어 ‘copper’의 어원은 그리스어 ‘Cyprus’이다. ‘키프로스’ 혹은 ‘사이프러스’라고 부르는 이곳은 기원전 9,000년부터 문명을 시작한 곳이며, 기원전 2,500년 전부터 구리 제품(청동기)을 교역한 인류 문명의 요람이다. 박광수가 말하는 구리는 문명의 시작을 의미한다. 키프로스의 청동기와 중국 고대 삼대(三代)의 청동기는 제식(ritual)을 위한 것이었다. 그 속에 신(자연)과 하나가 되려던, 염원, 즉 천인합일(天人合一)을 통하여 자연과 조화롭게 살고자 했던 인류의 바람이 담겨있다.
둘째, 전기는 기술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원천이다. 구리는 전기를 통하게 하는 길[道]이자 그릇[器]이다. 전기라는 에너지의 소통을 통하여 인류는 진일보한 기술 문명의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기술 문명은 수많은 혜택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연을 생명이 아니라 이용해야 할 사물쯤으로 대상화했고, 폭압을 가하다 급기야 파괴했다. 이러한 부작용을 우리는 상징적으로 Covid-19 기간에 절실하게 체험했다. 자연이 우리에게 복수로 되돌려준 것이다.
셋째, 구리는 닥터 코퍼(Dr. Copper)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닥터 코퍼란 구리 가격 흐름으로 앞으로의 경기 동향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된 말로써 세계 경제 전반뿐 아니라 원자재 시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향후 귀추를 읽는 지표로 활용된다. 실제로 구리는 전기ㆍ전자ㆍ건설ㆍ해운ㆍ항공산업 등 산업 전반에 걸쳐 핵심 소재로 쓰이는 만큼 제조업 수요 증감 여부를 잘 반영해 주는 특징이 있다. 또한, 가공성과 전도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전자제품뿐만 아니라 자동차 부품으로도 많이 쓰인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에도 필요하다. 구리는 전 세계에서 각종 정책을 세울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 즉, 문명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박광수 PARK Gwangsoo, Small Mountain 작은 산, 2023,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62.2x130cm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손을 가리켜 눈에 보이는 뇌라고 말했다. “The hand is the visible part of the brain.” 손은 뇌의 연장선이다. 손은 단순히 붙잡고 움켜쥐고 모으는 기능을 넘어서 우리의 온갖 생각과 개념을 실현해주는 최전선 선봉장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구리와 손’은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포괄하고 있다. 그 의미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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