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 갤러리
임노식은 붓으로 그린 풍경을 다시 지우며 그림을 완성한다. 캔버스에 유화로 고향의 들녘을 묘사한 뒤, 투명 오일파스텔로 화면 전체를 문질러 지우는 것이다. 이때 표면에는 반투명한 막이 생기고, 그림 속 형상들은 안개 너머의 풍경처럼 흐릿해진다. 그가 그리는 것은 경기도 여주의 작은 고향 마을,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과 자연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관계의 풍경이다.
임노식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서 예술전문사를,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양화를 전공한 이력을 바탕으로 유화와 오일파스텔을 결합한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다져왔다. 금호미술관과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스위스 취리히의 소투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22년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됐고 2025년 광주문화예술상 허백련미술상을 받았다.
그의 작업은 발로 걷는 데서 출발한다. 작가는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고 화면에 옮기는 대신, 여주의 들녘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벼와 들꽃, 구름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수집한다. 이렇게 모은 이미지를 작업실에서 원래의 시간과 거리에 상관없이 한 화면 위에 재배치하고, 유화로 그린 뒤 투명 오일파스텔로 지워낸다. 이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일정한 압력으로 모든 붓질을 지워내는 일이다. 작가는 “지우는 동시에 막이 형성되기 때문에, 지움과 만들어짐이 하나의 행위 안에서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임노식의 작업은 3년 전을 기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작업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공존하는 것들을 그리던 그가 고향 여주로 시선을 옮긴 것이다. 마을에는 대대로 땅을 일궈온 노인들과 어느 순간부터 함께 일하게 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같은 시간과 장소를 나누며 살고 있다. 작가는 장례문화와 다문화, 농경문화를 소재로 “함께 길러지고 자라나고 사라지고 땅에 묻히기까지의 시간 속에서 서로를 떠받치는 이야기”를 그린다며 “다음 작업은 문화, 가족, 집성촌, 다문화를 주제로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Kiaf에서 임노식은 대표작 ‘선산 – 풍경 37’을 비롯해 ‘들꽃 – 풍경 60’, ‘형제 – 풍경 38’ 등 유화 신작과 ‘작업실’·’WD’ 연작을 선보인다. 화면을 덮은 막 때문에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는 듯하면서도 형상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작가는 “흐릿한 막 너머에서 들꽃 하나, 벼 한 덩어리를 발견했던 순간이 관람객에게 남는다면, 그것이 작업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그림 앞에 선 관객들은 앞뒤, 좌우로 거리를 옮겨가며 안개 속에서 풍경을 찾아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Brother - Landscape 27, Oil on canvas, 190×105 cm, 2025
Field - Landscape 36, Oil on canvas, 190×117 cm, 2025
Rice Seedling - Landscape 24, Oil on canvas, 190×117 cm, 2025
Tree - Landscape 39, Oil on canvas, 190×117 cm,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