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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_ 淡

2021. 11. 12 – 12. 30
김택상

빛과 색 속에서 윤회하는

Aurora-2021-9,water acrylic on canvas,131x132cm,2021

김택상의 페인팅 앞에서 나는 채도가 다소 낮은 색의 면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반짝거리지는 않은데도 화사하게 보이는 색면 캔버스는 뭔가 안개라도 낀 듯이 가물거렸다. 자세히 보려 눈을 부라려 떠도, 명상하듯이 가늘게 반눈을 떠도 보는 데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생각이 어디론가 달아나서 사고 자체가 정지된 듯했다. 색을 본다기 보다는 빛을 느낀다는 기분이 들었다. 애드 라인하르트(Ad Reinhardt) 그림처럼 색면이 보는 나를 압도하지도 않고,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이나 마크 로스코(Mark Rothko)처럼 그림이 나를 빨아들이는 느낌도 아니었다. 오히려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 백색 회화나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인스톨레이션처럼 빛이 색의 형태로 안개처럼 흘러나와 나에게 스멀스멀 스며드는 촉각적인 느낌이 들었다.

로스코는 자기 그림을 45센치 거리에서, 바넷 뉴먼은 1미터 거리를 두고 보라고 했지만, 김택상 그림은 그냥 각자가 보고 싶은 자리에서 기분대로 보면 된다. 작은 사이즈의 그림을 멀리서 볼 때 더 잘 느껴지는 게 있고, 큰 그림을 다른 그림과의 경계에서 보는 게 좋을 때도 있었다. 그림과 대면한 뒤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색채 자체가 미묘하게 변주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보는 내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독특한 입체감과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생각하면 할수록 뭔가 더 사고가 엉키는 기분까지 든다. 시지각이 매우 현상적인 종합 감각으로 다가온 이후 특정 색으로 환원되어 작동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멍한 듯 바라보면서 그냥 느끼는 그대로 기운이 생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림이고 전시다. 2019년 연말 서울 리안 갤러리에서 열렸던 《색과 빛 사이에서》전을 볼 때 딱 그랬다.

캔버스 천을 아크릴 안료를 풀은 물속에 2-3일가량 두면 안료 속에 있던 접착제가 물에서 용해되면서 안료의 입자만 캔버스천 위에 착상한다. 염색처럼 천에 안료가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천 위에 가볍게 달라붙는다. 이렇게 착색된 캔버스를 물에서 꺼내 말린 뒤, 다시 아크릴 안료를 풀은 물에 작품을 담그고, 꺼내서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20-30회 정도 이런 공정이 반복되면서 입자들이 캔버스 위에 반복한 만큼의 레이어가 생긴다. 물에 안료의 색이 묽어지며 채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데도 그 모노톤으로 중첩된 레이어 사이에 생긴 공간감 때문에 밋밋한 색면이 입체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색 자체가 스스로 발광하는 듯이 보여 미스터리한 후광이 나타난다. 물에 녹아있는 안료가 캔버스 천에 착상되지만 입자와 입자 사이에 채워진 물이 증발하면서 물의 흔적이 남아 광택같은 게 생긴다. 일종의 “물광” 효과다. 김택상의 작업에서 안료의 선택만큼이나 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부에 원천을 둔 빛으로 생겨나서 인위적으로 투사되는 환영주의적인 색이 아니라 일상에서 목격하고 경험한다는 일상의 빛으로 빚어진 색을 요제프 알베르스(Josef Albers)는 “부드러운 발광(lambent incandescence)”으로 개념화 하였고, 김택상은 자신의 방식으로 회화로 구현하였다.

Resonance-21-6,water acrylic on canvas,184x188cm,2021

전시 제목인 ‘담(淡)’은 물을 뜻하는 한자의 부수에 불꽃을 뜻하는 상형이 형성되어 이루어진 문자다. 불꽃이 아름답게 다 타서 재가 되고, 그 타고 남은 재가 물에 섞여 있는 상태로 풀이된다. 먹이나 고전적 안료가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감안하면, 담은 증류수처럼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이 색을 빚어내는 시각적 장치다. 김택상에게 물은 단순히 농담과 채도를 조정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방법을 넘어선다. 오히려 안료와 대등한 예술의 미디움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다. 물에 흡수된 빛이 물을 뚫고 나오는 담의 작동을 미루어 볼 때 물은 작품의 필수불가분의 일부다. 물로 통제된 색조의 농담은 반복된 공정으로 생긴 반투명한 층위들의 경계를 이루며 발색의 효과를 풍부하게 한다. 물에 흡수된 빛, 즉 물에 침투한 빛이 캔버스 바닥에서 튕겨 나오면서 색이 산란되어 스며들고 깊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자연계 빛이 분해되는 그 현상을 김택상은 색채를 통해 재현하면서 빛을 물질화 시키고, 자연을 실재로 치환하여 자신의 그림을 하나의 실재로 제시하였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물질적으로 경험하면서 캔버스 표면이 공기 같은 빛이 되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또 이 작품들이 전시되는 시공간에서의 경험이 일상에서 경험과 매우 생경한 체험을 하게 된다.

김택상이 2018년 대구 아소갤러리에서 1년 동안 진행한 “사계절 프로젝트”야말로 캔버스 평면의 틀 안에서 갇혀있던 자연이라는 실재를 시공간으로 “과잉” 확장하려던 시도였다. 빛과 물, 바람에 대한 감수성을 새롭게 환기시켜서, 그 전시가 일어나는 시공간 자체를 하나의 인스톨레이션 작품처럼 조성하였다. 모노크롬의 비조로 알려진 말레비치(Kasimir Malevich)가 “채색된 평면이 곧 살아있는 실재 형태”라고 말한 바를, 김택상은 자신의 감각과 방식을 통해 말레비치의 실재를 드러내었다. 말레비치가 색채를 회화에서 독립시켜 색채의 체계를 “여하의 미학적 규범도 경험도 유행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 세계라는 관념을 절대주의란 이름으로 선언했다면, 김택상은 자신의 캔버스 안에서 생물이 발하는 색을 물과 빛, 그리고 바람과 탄소로 구성된 물질적 세계로서 미술적으로 구현하였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그림을 “본질적으로 어떤 질서에 의해 모인 색채들로 덮여있는 평면”으로 봤는데 비해, 모노크롬 계열의 아티스트들은 캔버스 전면뿐만 아니라 그 전체를 색체로 덮으면서 특정한 평면 작품을 평면이 아닌 오브제로 제시하였다. 김택상의 회화는 평면적 형태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그 평면의 효과가 공간에 스며들면서 공간을 특정하게 장악하여서 평면과 오브제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Breathing light-Gentle breeze 2021-2,water acrylic on canvas,97.5x102cm,2021

김택상은 말레비치부터 로버트 라이먼까지 이어진 장구한 모노크롬 회화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게 작업을 해왔다. 단순히 단색으로 캔버스 전체를 덮는 회화적 수행뿐만 아니라 작품 제작 방식에서도 뭐를 새롭게 만들고 조성하려하기 보다는 기존에 있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방식으로 드러내거나, 손을 사용하면서 감정이 묻어나는 표현적인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은폐한다는 모노크롬 회화의 특징이 대체로 계승되고 있다. 아티스트의 자전적인 표현의 흔적도 없으며 작가적 현전을 불러일으키는 어떠한 지표적 제스처(indexical gesture)도 물론 없다. 심지어 작품을 손으로 칠하거나 뿌리기보다는 기계적 도구를 사용하여 제작한다는 데서도 모노크롬적이다.

그러나 김택상의 작업을 좀 더 내밀히 들여다보면서 모노크롬이라는 미술 사조와 그 흐름의 맥락을 따져보면 전혀 모노크롬과 상관이 없어 보인다. 김택상이 모노크롬적으로 작업을 해야할 동기와 이유, 그리고 입장이 없다. 맥락도 완전히 다르다. 서구 미술사에서 모노크롬의 출현은 기하학적 원근법이 구축한 환영적 시각에 입각한 회화 행위를 절대적으로 중단시켜 미술사를 원점에 다시 출발시키려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모노크롬이 완벽한 회화적 순수성에 도달한 최후의 비대상 그림이고 동시에 오브제로서 시작되는 최초의 작품이 된다. 일찍이 로스코가 자신의 그림을 “모든 양식에서 벗어난 진정한 무방식의 최초의 보편적 그림”이라고 칭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런데 김택상은 회화에서 환영을 제거할 이유가 없었다. 비서구 사회에서 그가 배우고 받아들였던 모더니즘 계열의 회화 자체가 언제나 새로운 출발이었던 만큼 회화의 순수성과 기원에 대한 열망이나 판타지도 없다. 김택상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의 색에 매료되어 색으로 자신만의 감각의 세계를 구축했고, 그 감각에 새겨진 이미지를 물질적으로 시각적으로 펼쳤을 뿐이다. 색은 본래부터 기만적이다. 있는 대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각된 색과 인식된 색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김택상은 물리적 사실과 심리적 효과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그 간극 속에서 작업을 해왔다. 오랫동안 색을 관찰하고 실험하면서 자신만의 지각적 경험을 현상학적인 경험으로 환원시켜 회화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이런 입장과 태도는 담론이 작품 앞에 현전하는 단색화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작업을 진행해 왔다는 것으로, 이번 대구 리안 갤러리 전시에서 그 차이를 명백하게 보여줄 것이다.

김웅기: 미술비평

리안갤러리 대구
대구시 중구 이천로 188-1
053-424-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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