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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ful Landscape – New Iconology that Conveys Coexistence

김영환 초대전

I. 프롤로그
김영환의 작업은 템페라라고 하는 오래된 전통적 회화를 중심으로 한 채, 판화, 조각을 두루 아우르는 장르를 통해서 도상 기호(Iconic sign) 혹은 상징 기호(Symbolic sign)로 충만한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이미지는 대개 ‘인간과 연관된 도상’이나 ‘자연과 연관된 도상’으로 드러나고 상징화되거나 구체화된다. 이러한 도상의 상징화와 구체화란 무엇인가? 그가 구축한 도상은 화면 속에서 서로 상응과 대비를 이루면서 주제의 차원에서 공존과 공생의 메시지를 전한다. ‘조용한 풍경’, ‘조용한 풍경-만남’ 그리고 ‘조화로운 집’과 같은 주제 아래, 그가 선보이는 인간과 자연에 관한 공존과 공생의 메시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리고 그의 작품이 지닌 미학적 함의는 무엇인가?

Peaceful Landscape, Tempera on canvas, 130.5x97cm, 2024

II. 템페라 회화 – 옛 조형이 품은 기품과 숭고
김영환은 13세기 초기 르네상스 시기 두치오(Duccio di Buoninsegna)나 첸니니(Cennino Cennini)가 사용하였던 템페라(tempera)라고 하는 옛 회화 기법을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변용한다. 템페라는 달걀노른자, 벌꿀, 무화과즙 등을 고착체로 만든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지칭하는데, 수성과 유성이 두루 통칭했지만, 15세기 유화물감의 보급 이후 주로 달걀노른자와 안료를 섞어 사용한 수성 화법을 템페라로 지칭해 왔다. 템페라 화법은 물감이 빨리 마르는 까닭에 건조 전후의 색상이 다르고 명암이나 톤의 변화에 있어 자유로운 표현이 어려운 단점이 있는 반면에, 건조된 뒤에는 물감이 쉽게 변질되지 않는 내구성을 지닌다는 장점이 있다.
김영환은 템페라화의 이러한 단점을 ‘오랜 시간을 통해 이르는 명상’과 같은 창작 과정으로 이해하고 지난하고도 수고스러운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아사천이나 광목천 위에 아교를 오랫동안 여러 번 발라 튼튼한 회화 바탕을 만든다. 그 위에 정제수 알콜, 명반(明礬), 달걀노른자 그리고 안료를 섞어 이미지를 천천히 쌓아 올린다. 이때, 그는 물감이 완전히 마른 후 고운 사포로 회화의 표면을 곱게 갈아내고, 신비로운 색감이 나올 때까지 다시 칠하고 닦아내는 작업을 수십 차례 반복한다. 무수한 시간과 노동을 투여해서 밀도가 높으면서도 소박하고 담백한 효과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가히 ‘시간 회화’ 혹은 ‘명상 회화’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회화는 옛 조형 기법인 템페라화가 선보여 왔던 종교적 도상이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교로 다져진 탄탄한 지지대 위에 여러 번 쌓아 만든 깊이감 가득한 붉은빛이나 푸른빛 또는 금빛을 바탕색으로 한 채 그 위에 그린 인물, 집, 풍경과 같은 단순하고도 정제된 조형 언어는 우리가 가톨릭 미술에서 접해 왔던 ‘도상 회화(圖像繪畵)’로 번역되는 아이콘 회화(Icon Painting)의 ‘종교적 기품과 숭고(sublime)의 미학’을 품어 안는다. 칸트(I. Kant)나 버크(E. Burke)가 언급했듯이, 숭고는 압도적인 두려움과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종교적 경험 혹은 초월적 자연의 미학을 함유한다.
반면에, 김영환의 회화는, 압도적인 공포와 경외가 견인하는 숭고보다는 단순하고도 상징적인 도상을 통해 신과 자연의 초월성을 드러내는 숭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즉 그의 회화는 그리스도, 성모자 그리고 성인과 같은 성상(聖像)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던 1~4세기의 초기 그리스도교미술보다 성상파괴(iconoclasm) 운동이 주도했던 8~9세기의 중기 비잔틴미술의 특징과 결을 같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성상을 우상(idol)으로 간주했던 이 시기에는 신의 형상 대신 기하학적 도상의 성수(聖樹)와 같은 자연과 단순한 형상의 성물(聖物)과 같은 초월성의 상징적 도상이 주를 이룬 까닭이다.
오늘날 아이콘(Icon)의 그리스 어원인 에이콘(Eikon)이 원래 ‘물질적, 외형적’ 모방 외에도 ‘비물질적, 내면적’ 모방을 함께 지칭하는 용어였듯이, 성미술의 위상을 견지하는 김영환의 아이콘 페인팅, 즉 도상 회화는 ‘보이지 않는 신’의 ‘외형적/내면적 정체성’을 ‘보이게 하려는’ ‘신현(神顯, theophany)’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템페라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단순하고도 상징적인 도상을 신비로운 색과 함께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현실을 아우르고 그것을 초월하는 비물질적인 영적 세계를 가시화는 메시지를 담담히 전한다. 가히 ‘옛 조형이 품은 기품과 숭고’를 전하는 미술이라고 할 만하다.

Peaceful Landscape, Tempera on canvas, 53×45.5cm, 2024

III. 공존과 공생의 뉴아이코놀로지
김영환의 템페라 회화는 숭고의 미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존의 메시지와 함께 탐구하고 전하는지 살펴보자.
김영환의 회화에서 성수, 성물과 같은 상징적 도상은 크게 ‘인간과 연관된 도상(손, 남자, 여자, 휘장, 집, 그릇, 배, 사다리 등)’과 ‘자연과 연관된 도상(빛, 해, 달, 구름, 강, 산, 나무, 새)’의 두 범주로 변용된 채 새로운 유형의 성화(聖畫)나 성(聖)미술로 도상화되거나 상징화된다. 여기서 인간이나 자연은 기독교적 사유에 국한되지 않고 스피노자(B. Spinoza) 철학에서 전하는 ‘신 내재적 자연과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즉 그것은 ‘신은 모든 사물의 초월적 원인이 아니라 일종의 내재적 원인으로서, 자연에 가까운 존재’라고 하는 범신론과 같은 것이다. 김영환의 작품에서도, ‘신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모든 것이 신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던 스피노자의 사유처럼, 인간 혹은 자연과 연관된 도상은 언제나 신과 연계된다.

Peaceful Landscape, Tempera on canvas, 70x80cm, 2024

작품을 보자.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커다란 손(手)은 ‘새의 손(Vogel Hand)’이라는 제명처럼 종교적 도상 회화의 함축적 메시지를 전한다. 즉 이 도상은 서구 그리스도교미술사에서 ‘초월성, 초자연적 힘, 신성한 권능, 성령, 축복’과 같은 메시지를 함유한 신적 존재를 은유한다. 창공을 뚫고 빛처럼 내려오는 커다란 손이나, 나무를 키워 올리고 있는 상흔을 품은 손의 형상 그리고 좌초된 나룻배를 견인하는 커다란 손의 형상처럼 이 도상은 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의 은혜와 축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나무, 건물이 직립하고 있는 현실계로 보이는 땅을 받치고 있는 커다란 손을 형상화한 작품은 어떠한가? 이것 또한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밀접한 ‘자연 내재적 신관’을 여실히 선보인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손은 절대자의 손의 형상이라는 해석에만 머물지 않고 ‘신, 자연, 인간’을 영적 연결을 시도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상징하고 있는 도상처럼 읽히기도 한다. 또는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잇는 매개자의 숭고한 초상으로서 말이다. 따라서 김영환의 작품 속에서 숭고는 신-자연-인간을 연결하고 공존과 공생의 메시지와 공유하면서 현현한다.
또 다른 작품을 보자.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집과 키 큰 초록 나무가 함께 만든 풍경이나, 기다란 문을 가진 건물(집 혹은 성전)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만드는 풍경은 조용하고도 신비롭다. 사람의 형상과 함께 서 있는 무성한 잎사귀의 나무나, 앙상한 나무에 걸쳐 있는 휘장이 대비되는 조용하고도 생경한 모습은 희미하게 빛나는 달인지 해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새벽녘 혹은 저녁 무렵의 모호한 풍경과 연동된다. 도상과 또 다른 도상이 연결된 채 만드는 이러한 모호한 이미지는 역으로 우리에게 다의성을 품은 풍요로운 의미를 창출하면서 무엇과 무엇의 공존과 공생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한다.
그의 작품에서 도상과 또 다른 도상의 만남은 자연과 인간의 범주에서만 머물지 않고, 신-자연-인간 사이에서 무엇과 무엇을 지속해서 연결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남자, 여자, 집, 배, 사다리, 해, 달, 구름, 강, 나무와 같은 도상이 작품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재배열되면서 만남을 거듭하는 그의 작품은 모든 존재가 만나 이루는 상응과 조화 그리고 다양한 공존과 공생의 의미를 우리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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