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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앤 스모크

장재민

한국 미술계의 젊은 주축으로 주목받고 있는 장재민(b. 1984) 개인전 《라인 앤 스모크》가 학고재에서 열린다. 2020년 학고재에서 개최되었던 《부엉이 숲》 이후 3여 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 작가가 2023년 한 해 동안 새롭게 제작한 아크릴릭 구아슈 작업을 선보인다. 풍경화와 정물화에 인식론의 개념을 입혀서 역사적 연원이 깊은 두 장르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게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안다. 플레이해야 할 화면이 처음에는 가려져 있는데,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할수록 가려진 화면이 조금씩 열린다. 게임이 완전히 진행되었을 때, 비로소 전체 지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인식도 이와 같다. 우리는 누구나 처음 가보는 장소가 익숙하지 않다. 처음 가보는 장소, 타지, 외국은 낯설다. 처음 맞이하는 장소를 바라볼 때 완벽한 모습이 뇌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장소에 대한 시간이 누적되고 경험이 반복될 때 비로소 장소의 본질을 파악한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밭을 보았을 때, 대나무 하나하나의 특성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대밭을 수시로 와서 대나무를 마주하고 쓰다듬고 바라보아야 대밭의 특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듯 사물의 상태가 파악되는 경지를 서양 철학에서는 사물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구했다고 말하며, 동아시아 유학에서는 격물(格物)하여 치지(致知)에 도달했다고 표현한다.

장재민 JANG Jaemin, 깊은 웅덩이 끝 Edge of a Deep Puddle,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canvas, 200 x 150cm (2), 200 x 300cm (total)

서양은 풍경이나 사물의 객관적 형태를 화면에 정확히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동양화는 사물의 객관적 형태를 재현하는 것은 하품의 인식으로 삼았고 기운생동의 추구야말로 높은 경계의 회화라고 규정했다. 사실상 서양의 풍경화와 정물화는 객관적 사실을 잘 표현했다기보다 수학의 법칙과 광학의 도구를 회화에 응용한 것에 불과하다. 처음 보는 풍경과 사물을 수학적 도구로 표현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인식이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기운생동이라는 동양적 인식은 파악하기에 더욱 요원하다. 다만 수만 번을 그리고 사물에 대한 경험과 인식의 수준을 고도화했을 때 기운생동이 다가온다고 보았다.

장재민은 풍경화와 정물화에 대하여 새로운 접근법을 취한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과학적(객관적)으로 대한다는 서구의 거만함도 없으며, 기운생동을 표방하여 도달하기 어려운 고원한 지점에 가치를 두지도 않는다. 풍경을 접하고 사물을 마주하는 처음의 순수한 상태, 모든 것이 파악되지 않은 모호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그린다. 그러한 상태는 의식이 순수한 상태이다. 작가는 화학(畫學)의 지식에 붙잡히지 않으며, 미술사의 전거(典據)에 구속되지 않은, 초탈(超脫)의 상태로 돌아오고자 한다. 동서양의 모든 진리를 재고하여 처음으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이때 작가가 그리려는 풍경이나 사물은 마치 화면에서 부유하듯 연기처럼 사라진다. 이를 두고 작가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필선이라 생각하여 《라인 앤 스모크》라고 명명했다. 장재민의 회화세계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지를 구축하여 한국 회화계의 새로운 바람을 예고한다. 특히 이번에 출품하는 <나무>, <먼 곳의 밤>, <새들의 자리>, <언덕>, <폭포>, <검은 산의 새>와 같은 작품은 근래 우리나라 회화계에서 흔치 않았던 회화 유형이자 수작이다. 유럽 인상주의 회화는 인상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다. 동양화의 옛 거장은 생명의 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장재민 작가는 있는 그대로 의식이 가는 바대로 그리기에 자연스럽고 청신하다. 그들이 언뜻 비슷하면서도 내용이 천양으로 다르다.

학고재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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