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2 - 10. 26 | [GALLERIES] Hidden M Gallery
이한정
히든엠갤러리는 10월12일부터 26일까지 이한정작가의 개인전 展을 개최한다.
이한정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앤텔로프캐년을 담은 주묵작업을 선보인다. 미국 서부에 위치한 앤텔로프캐년은 붉은 빛깔의 사암으로 형성된 좁고 깊은 협곡이다. 비탈진 표면에 균열이 만들어지면서 물이 흐르고 침식 작용이 발생하여 부드러운 사암을 깎아 들어가 마치 바위 위에 물결이 치는 듯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드문드문 메마른 잡초 무성한 오렌지 빛깔 흙 길을 따라가다가 좁은 동굴 같은 곳으로 한 발짝 들어서자,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굴곡진 바위 틈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강한 햇빛은 시시각각 다른 형태와 다른 색감으로 변하며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걸어가는 만큼 보이던 것이 감춰지고 숨어있던 면이 드러나며,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색과 느낌이 달라진다. 사암층에 나타난 층리와 부드러운 곡선들이 빛의 유희에 따라 순간순간 변하는 모습은 마치 바위 안에 생명이 깃들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랜 과거로부터 긴 시간 동안 물이 표면에 흘러 형성된 물결 무늬 위에, 현재의 빛이 닿아 만들어낸 우연적인 형상과 색감은 기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몇 천만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자연 앞에서 차분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한다. 깊고 오랜 역사의 시간과 빛이 비추는 찰나의 순간이 만나 드러나는 모습들은 우연과 필연의 경계에서 그 순간에만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광경을 만들어낸다. ‘충분한 세월만 주어진다면 바위보다 더 변화무쌍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라고 한 누군가의 말처럼, 온몸에 주름처럼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작은 붓질로 겹겹이 쌓아 올린다.
풀 한 포기 허락하지 않은 단단한 바위의 원초적이고 강렬한 느낌은 주묵朱墨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붉은 먹인 주묵朱墨은 주사朱砂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먹으로, 예로부터 붉은 색으로 글씨나 그림을 그리면 악귀를 쫓는다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 부적을 만드는데 주로 쓰였다. 이러한 재료의 신비로운 힘과 역사적인 의미를 빌어 한 겹 한 겹 붓질을 더하는 행위를 통해 오랜 시간 존재한 바위들의 견고하고 영적인 모습과 생명력을 담아 보여주고 있다.
작가에게 자연은 멀리서 바라만 보는 감상의 대상이 아닌 현재 살고 있는, 본인과 가까이에 있는 자연 그 자체를 말한다. 작가가 보고 경험한 풍경들이 작가의 감성이 더해져 고요한 울림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히든엠갤러리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86길 16 제포빌딩 L층, 06223
+82.2.539.2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