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30 - 10. 20 | [GALLERIES] GalleryMEME
강석영
Chaosmos#01, 53×33.3cm, oil on canvas, 2023
캐스팅 기법을 사용한 동시대적 감각의 백자로 추상도자의 세계를 구축해 온 강석영의 작업은 조형원리에 충실한 형태를 만들고 물리적 충격을 가해 우연적 효과를 가미함으로써 인위적인 자연성을 추구한다. 하얀 백토를 고온에서 소결시켜 발현되는 순도 높은 백색과 유약을 사용하지 않은 표면은 작품의 간결함과 감각적 요소를 더하며 태토 자체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광택은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전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특유의 미니멀하면서도 감각적인 입체작업과 더불어 회화성이 돋보이는 평면작업을 주로 선보인다.
Untitled, 자기소지, 18.0×18.3cm, 2023
추상화 같기도, 산수화 같기도 하고 인상파의 작품이나 올오버 페인팅이 연상되기도 하는 강석영의 신작은 석고 틀을 이용하여 도자로 만든 판이다. 1300도의 높은 온도에서도 휘지않게 종이와 같이 평평한 도자 판을 만드는 작업은, 그것도 캐스팅 기법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성형뿐만 아니라 건조과정과 소성과정에서의 변형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재료와 기법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과 탐구가 드러난다. 하얀색 도자판 위에 안료를 섞은 흙물을 커다란 붓질로 표현한 작업에서는 운동감, 속도감과 함께 작업과정에서의 신체의 괘적을 감지할 수 있다. 도판 표면 위에 덧입혀진 흙물의 두께감은 획을 긋기 위해 작가가 행한 순간의 격렬한 제스처를 그대로 전해준다.
Untitled, 자기소지, 55.0×35.0cm, 2023
이번 전시에서의 두드러진 변화는 백토 본연의 순수한 백색미를 추구하던 기존 작업과 달리 적극적으로 색을 사용했다는 데 있다. 화면 전체를 모노톤의 색으로 뒤덮은 일련의 작업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도자 표면 위에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석고판 표면에 뾰족한 도구로 선을 그어 요철을 만들고, 안료를 섞은 흙물을 동양화 붓으로 하나하나 농담을 달리하여 마치 점을 찍듯 화면을 채운 후, 그 위에 흙물을 부어 도자판을 만든 작업이다. 화면 전체에 텍스처가 세밀히 새겨져 있고, 작품의 표면 위에 색이 얹혀진 것이 아닌 도자판 내부에 색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작방식으로 인해 화면을 가득 채운 붓 자국은 관람자가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리고 빛에 따라 변화하며 깊이감을 선사한다. 어떤 작업은 표면의 텍스처와 색이 씨실과 날실처럼 직조되어 시각적이면서도 촉각적인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서양미술에서 재현의 도구로 창을 사용하였듯이 하나하나의 화면에는 작가 작업실의 큰 창에서 보이는 철 따라 변하는 계절이 담겨있다. 녹음이 푸르른 여름날, 고운 단풍이 물든 가을 아침, 눈 내린 한겨울 창밖, 비 내리는 어느 봄날의 풍경을 각각의 화면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담아낸다.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이 전면추상회화 형식으로 표현된 작업들은 한땀 한땀 숨을 고르며 새겨 만든 산수화 같다.
Untitled, 자기소지, 53.5×66.5x14cm
완성된 형태에 인위적으로 힘을 가해 우연의 효과를 의도한 기존의 입체작업에서 작가의 행위와 몸짓을 엿볼 수 있듯이, 순간의 강렬한 붓질과 더불어 하나하나 숨을 고르며 속도와 강약을 조절한 붓질에서도 작가의 섬세한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작가 자신이 온몸으로 마치 씨름선수와 같이 작업한다고 표현하였듯이, 강석영의 작업은 제작과정에의 작가의 수행적 태도를 드러낸다. 결국 강석영의 작품이 공유하는 감각적이고도 미니멀한 조형언어는 재료와 기법에 대한 작가의 자세와 치열하고도 섬세한 제작공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공예적 요소와회화적 요소, 서구적 형식과 동양적 미감이 중첩되는 강석영의 신작은 공예가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 공예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담고 있다.
김지혜(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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