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gallery NoW
2023. 4. 5 – 4. 27
유현미
유현미의 이번 시리즈 적(敵)은 2022에 출간한 그녀의 소설 적(敵)으로부터 시작되는 작품이다.
유현미의 그동안 작업 Still Life, Composition, The Numbers, Bleeding Blue, Good Dream 등의 대표적인 시리즈 등은 사진, 회화, 조각, 설치, 영상을 아우르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사진작업을 보여주었는데 이번에는 거기에 그녀의 소설이 더해져서 모두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계 되어지는 새로운 형식의 작업을 보여준다.
유현미의 그동안 작품은 공간-조각(레디메이드 포함)-페인팅-설치-촬영의 수순을 거쳐 최종 사진작품으로 완성되었다면 이번 작품은 소설-설치-페인팅-촬영-캔버스프린팅-유화리터칭의 수순을 거쳐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 작품은 그동안의 사진 작품과는 달리 에디션이 없고 모두 오직 한점인 유니크 작품으로 선보인다. 공간과 사물(조각)들에 유화물감으로 터치감을 주어 음영과 그림자까지 그려서 어디까지가 실재인지 어디까지가 그림인지의 구분을 지을 수 없는 경계의 환영을 다시 촬영하여 이를 사진으로 출력하여 그 위에 그림을 그려 완성된다.
문장과 공간, 페인팅과 사진, 실재와 허구, 입체와 평면, 디지털과 아날로그, 공간과 시간의 경계에서 무의식과 의식 모두를 탐닉하는 혼용된 경계의 모습을 보여주며 문학, 설치, 회화, 동영상, 사진 등으로 보여주는 그녀의 ‘다매체’작업은 시와 소설, 콘티 등을 쓰기 시작한 200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다. 2007년작 <돌구름 Stone cloud>은 조각과 공간에 페인팅 과정을 거쳐 사진으로 완성된 작품이며, 2009년작<그림이 된 남자 A man turned into painting >는 시나리오-영상(단편영화)-평면화되는 과정을 거쳐 완성 되었고, 또 2011발표한 영상작품 <내 안의 나. Brain and heart >에서는 촛불이 꺼질 때까지 병치된 영상에서는 그녀의 시가 흐른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서 그녀가 시, 소설 같은 문학적 요소가 미술적 방법과 결합하여 그의 작업에 녹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번 작업은 먼저 제작된 시나리오 대로 실물 사람 위에 바디페인팅과 리터칭으로 그리는 퍼포먼스 과정을 거쳐 이를 영상과 평면화된 작품으로 완성된 <그림이 된 남자>로부터 시작점을 갖게 된 작업이다. 이렇게 시나리오와 시가 토대가 되어 작품으로 흡수 되었던 것처럼 이번 작업 역시 소설<적(敵)>이라는 문학작품을 베이스로 제작된 작업이다.
참고로 소설 적(敵)의 내용을 보자. 처음 미대를 졸업하고 설레임으로 첫 전시를 열지만 무명작가의 전시는 관심도 주목도 받지 못하고, 그동안 작업을 격려했던 은사들마저 전시에 오지 않은 채 우울하게 전시를 마친다.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고 실의에 빠지려 할 때 A라는 인물의 격려에 “예술가는 대중을 따르는 자가 아니고 그들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사람”임을 자각하고 스스로에게 감동이 있는 그림을 그리자며 힘을 얻는다. 의도치 않게 작업실에 감금당한 채 초코파이로 연명하며 집중적으로 그림만 그려 새로운 작품 “부유하는 오브제”로 득의 작을 제작하지만 이미 발표한 그와 비슷한 컨셉의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고 분노와 슬픔, 자괴감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이불’속으로 숨고 만다. 경제적인 파산에까지 이르러 총체적 난국을 맞이하지만 다시 “통로는 내 안에 있다”는 말을 믿고 마음속의 그림 ”빛과 그림자가 있는 텅빈 공간”이라는 회심의 역작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밤새 그 그림은 누군가에 의해 덧칠이 되어 망가져 있었다. 자신의 작업에 훼방을 놓는 그를 찿기로 한다.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그가 커튼 뒤에 숨어 있음을 직감하고 커튼을 젖히자 그곳에 숨겨져 있는 나의 적(敵)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는 내용의 소설이다.
내 안에 적이 있다. 즉 내가 창작의 적이고 모든 것은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두려움이라는 주제인 셈이다.
<부유하는 사물들>, <적(敵)_자기복제> 에서 사물들은 공중에 떠서 유영하듯이 자신을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한 교묘하게 형상을 이루며 떠다니고 있다. 돌과 테이블은 이미 시리즈에서 선보였던 소재이다.
자기복제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작품을 새롭게 끄집어 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소설속에 나오는 A씨의 주장대로 “창작예술에서 자기복제야말로 가장 형편없는 카피지요” 라는 말에 대한 반박이다. 작가들은 늘 새 작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 가지고 있다. 과연 새로운 작업에만 답이 있는 걸까?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작업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닌가?’ 작가는 “과거에 좋았던 작업이 왜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를 다시 살피고, 더 새롭게 깊게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껴서”라고 말한다.
<적(敵)_자기복제> 에서 상징적으로 무게감이 있는 돌덩이와 천으로 싸인 테이블이 공중에 띄워지면서 초현실적 상상력은 증폭되게 된다. 거기에 미묘하게도 그림자까지 그림으로 표현되고 거기에는 현실적인 빛의 요소 즉 명암이 혼재 되어있다. 완성된 듯한 작품 위에 유화물감으로 덧칠을 하여 형태를 지워 내기도 하면서 형상의 존재와 부존재, 실재와 환영 사이의 경계를 드러낸다. 유현미는 이 환영적 작품을 통해 소설속에서처럼 작가에게 자신이 적이라는 작가의 깊은 고뇌가 공명된다.
벽에 걸리지 않은 뒷면이 보이는 빈 캔버스는 전시가 끝난 후 판매되지 않고 작업실로 돌아오는 작품들로 보인다. 그것들 역시 마치 패잔병들처럼 작업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마치 죽은 작품처럼 뒷면이 보이게 쌓아 놓게 된 상징적 모습으로 작품 속에 등장한다. 작품이란 마치 무대와 같은 하얀 벽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조명을 받으며 모두에게 관심을 받을 때 존재 의미가 부각되지만 전시 이후, 마치 연극이 끝난 뒤처럼 많은 작가들은 스스로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화려함 뒤의 쓸쓸함이나 허전함, 그리고 다음 전시에 대한 두려움이 또 다가오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유현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전시가 생활처럼 흘러갔으면 좋겠다.” 고… 큰 영광도, 큰 결핍도, 큰 두려움도 아닌… 일상이 작업이고, 작업이 일상이고, 작업이 전시이고, 평생 담담히 해 나가야 하는 일상 그대로가 작업이기를 바라는 그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래서 이번 신작 적(敵)시리즈는 다층적 모습으로 보여주는 그녀의 그동안의 모든 작업과 시간들의 무의식이 응축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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