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GALLERY YEH
2022. 8. 11 – 8. 27
임영균
임영균의 남극사진
사진은 예술성에 앞서 기록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술성이 없어도 기록성만으로도 사진이 성립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일반적인 회화작업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임영균의 작품은 그것이 인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든 풍경을 대상으로 한 것이든 기록성과 더불어 예술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임영균의 지구 오지 탐험은 벌써 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의 탐험은 새로운 것의 발견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이미 발견되었음에도 여전히 미답의 경지로 남아있는 시원의 풍경을 찾는 작업이다. 가히 탐험의 영역이다.
그의 탐험의 경로는 네팔을 위시한 히말라야 산자락의 원시의 삶의 풍정에서 시베리아, 몽골의 초원지대를 거쳐 남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남극은 다섯 번이나 답사하였고 여기 전시된 작품들은 그 결과물이다.
주변의 예술가들이 진지하게 왜 하필 그렇게 멀리 떨어진 남극까지 힘들게 촬영 여행을 하느냐고 질문한다. 바로 이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이어진 그의 촬영 여행은 그러기에 다분히 모험적이다. 주변의 예술가들이 묻는 질문에도 모험에 따르는 불안이 잠재된다. 그가 만나는 시원의 풍경은 이 상식적인 불안의 감도를 뛰어넘는 <발견의 경이> 아니 <발견의 희열>에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순백의 영롱한 남극의 자연의 마력에 이끌려 다시 고통을 감내하고” 그곳에 가게 되는 것도 <발견의 경이> <발견의 희열>에 대한 보답이 아니곤 이해되지 않는다.
신비한 자연의 만남이 주는 극적인 순간, 그것은 사진예술에서 흔히 말하는 <순간의 진실>을 훨씬 뛰어넘는 차원이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그곳에 등장하는 빙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이 미답의 풍경은 인간의 그 어떤 제어도 거치지 않은 순수한 존재의 현전이다. 존재이면서 존재 너머의 세계, 지상의 풍경이면서 이미 지상의 풍경이 아닌 시원, 태초의 창조의 숨결이 아직도 남아 있는, 부단히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차원의 풍경이다. 지구환경의 변화라는 전 지구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 풍경은 오롯이 작가 자신의 명상에 답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개별적 차원의 것이다. 개별의 진실의 결정이다. 태초의 창조의 순간을 추체험(追體驗)하는, 그래서 자연의 속살을 그 최초의 진실의 순간을 답파하려는 의욕의 결실에 다름아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순히 사진 -어떤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이 내장한 시각적 충일(充溢)에 전율할 뿐이다. 사진예술이 갖는 매력, 임영균의 탐험이 우리에게 주는 감격의 순간이다.
오광수 (미술평론가)
예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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