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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줄 튀기기

2022. 7. 9 – 7. 23
강준영, 김재준, 배대용, 정기훈

2GIL29 GALLERY 이길이구 갤러리는 7월 9일부터 7월 23일까지 4명의 작가 강준영(B. 1979), 김재준(B. 1990), 배대용(B. 1992), 정기훈(B. 1987)의 4인전 <Snapping a chalk line | 먹줄 튀기기>를 선보인다.

<먹줄 튀기기>는 ‘집’이라는 통념을 관찰하고, 의문을 품고, 분열하고, 새롭게 재구성하는 작가들의 조형 언어를 선보인다. 전시에 참여하는 네 명의 작가는 집에서 형성되는 최초의 사회적 경계(강준영), 집의 물성(김재준), 시간과 사건의 재구성(배대용), 그리고 집과 가족의 형태(정기훈)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강준영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과 기억 등을 아카이빙하고 이를 회화, 도자, 영상 등의 매체 위에 기록하는 조형 언어를 선보였다. 그의 작업에는 과거와 현재가 얽혀 일종의 레이어를 형성하고 있다. 작가의 유년 시절 건축가였던 아버지가 제도판 앞에서 설계하던 추억과 작업하는 본인 옆에서 어린 아들이 흙덩이를 말고, 짓이기고 쌓아가는 ‘놀이’를 목격하는 현재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부모-나-자녀. 삼대를 잇는 기억과 추억의 지평을 관통하는 ‘집’에 대한 질문을 이어간다. 최근 작가는 집을 ‘최초의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장소’이자 ‘최초의 사회적 경계’로 환원하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재준의 작품은 반(反) 건축을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작동한다. 건축을 전공한 작가는 ‘집’이라는 건축물의 네모난 기본 구조체, 큐브(cube)와 구성 요소인 바닥, 벽면, 기둥, 보 등이 지닌 단단한 성질에 의문을 품는다. 따라서 작가는 물리적인 구속에서 벗어나 가상세계에서 데이터를 안료로 디지털 풍경화를 제작하거나, 큐브들의 연속적인 움직임들을 포착하는 드로잉을 시도해왔다. 단단함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인 건축물에 반하여, 그의 작품은 집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조명한다. 마치 세포 분열의 과정처럼 김재준의 벽은 2D-2.5D-3D를 아우르며, 건축의 물성에 반하여 늘려지고, 분절되고, 벼르고, 연속되고, 확장하는 시공간을 제안한다.

배대용은 한 사람이 집이라는 장소에서 겪는 시간의 흐름과 사건, 쌓이는 흔적들을 재구성한다. 배대용의 드로잉은 태어나고 스러질 때까지의 시간을 마치 신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는 형태를 띤다. 건축의 조감도 혹은 배치도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향하는 호모 데우스(Homo Deus)적 시선을 가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개인의 경험에서 채집한 특정 사건과 감정을 매핑의 방법론을 통해 종이 위에 기록하는데, 이때 개인의 서사와 감정을 지워낸 객관적인 기호로 재록한다. 따라서 삶과 죽음 사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작가는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번역하고, 조직하고, 형성해 시각적 건축의 한 종류로 탈바꿈한다. 위에서 언급한 조감도 혹은 배치도처럼 말이다.

정기훈에게 집은 ‘안식처’로 작동한다. 생과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일터로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까지 비어있을 집을 채워주는 것은 그의 반려 식물들이다. 텅 빈 집을 잘 지켜줄 식물들을 위해 출근 전, 식물들의 메마름을 체크하고 이파리의 변화를 관찰한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도 이 루틴은 반복된다. 이제 작가에게 식물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된다.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 식물을 매만지는 행위는 집이라는 공간에 ‘로그인 / 로그아웃’하는 과정이 된다. 식물을 매만지며 오늘 하루도 잘 해냈음을, 무탈했음을 확인하는 이 과정은 결국 태초의 집의 목적이었던 궂은 날씨와 맹수 등의 위험요소를 피해 몸을 보호하던 안식처의 업데이트된 21세기 프로그램이다.

전시명 <먹줄 튀기기>는 경계측량 방법의 하나로써, 기초공사가 끝난 바닥에 벽의 위치를 잡기 위해 사용되는 기술이다. 먹물을 묻힌 긴 줄을 숙련된 목수가 튕겨내는 순간, 잘 닦인 바닥에는 먹줄이 튕겨져 검은 선이 새겨진다. 이 선에 따라 향후 몇십 년간 사용될 공간이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팬데믹을 겪으며, 전통적 집의 한계점을 경험했고, 확장 가능성을 탐구했다. 이와 같이 먹줄을 놓으려는 작가들의 행위는 이전 세대가 추구했던 이상향에 맞춰 설계된 ‘집’을 새삼스레 낯설게 만들고자 하려는 시도이다. 숙련된 목수의 먹줄이 구획하는 집처럼, 전시를 통해 새롭게 고안된 물리적∙정신적 공간인 집을 발견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후, ‘내 집’, ‘내게 맞는 집’을 위한 먹줄을 튕겨보길 바란다.

2길29 갤러리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58길 35, 2GIL29 Bldg. 35
02-620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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