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KUKJE GALLERY
2021. 8. 6 – 9. 12
박진아
국제갤러리는 8월 6일부터 9월 12일까지 부산점에서 박진아 작가의 개인전 《휴먼라이트(Human Lights)》를 개최한다. 박진아는 스냅 사진을 활용해 우리의 일상 속 장면들을 포착한 후 이를 재구성해 캔버스에 옮기는 방식의 작업을 진행해왔다. 예컨대 전시 설치 현장의 다양한 움직임, 공연 무대의 준비 모습, 밤 시간이 품은 다채로운 표정 등을 그리는데, 이로써 회화라는 플랫폼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평범한 순간들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국제갤러리와의 첫 전시인 《휴먼라이트》에서 역시 작가는 카메라를 보조 도구로 활용하며 자신의 회화적, 화가적 시각을 계발 및 발휘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신작을 위주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서사는 그러나, 전시작 중 예외적으로 오랜 구작인 2007년도 <문탠 04> 작품으로 시작한다. ‘월광욕’이라 번역할 수 있는 <문탠>은 젊은 어느 날 ‘달빛 좀 쬐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따라 시작되었던 한밤의 공원 나들이를 그린 연작이다. 달빛을 즐기는 밤의 활동 풍경이지만 정작 화폭 안에서는 자연의 달빛보다 인공의 카메라 플래시 효과가 두드러진다. 어두운 밤 플래시를 터뜨려 포착한 장면 안에서 인물들은 실제보다 평면적이고도 선명하다. 작품 속 장면은 마치 컴컴한 연극 무대 위 배우의 모습처럼 드라마틱한데, 배우들을 따라 한밤중 피크닉 장면으로 들어가다 보면 그 배경으로 기능하는 납작한 하늘, 즉 작가가 여러 겹의 붓질로 쌓아 올린 색면으로 시선이 향한다. 카메라의 효과와 인공 조명을 이용해, 작가는 도리어 실제적 재현의 굴레에서 벗어나 회화적 표현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박진아는 카메라를 활용해 연출되지 않은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어떤 의미로든 결정적이지 않은, 흐르는 시간 속의 우연한 유동적 순간을 카메라로 기록한다. 이때 누군가의 특징적인 표정이 박제되기도 하고, 어정쩡한 자세가 포착되기도 하며, 정작 그 순간에는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이 찍혀 있기도 한다. 즉 사진은 사진이 아니었다면 놓치고 말았을 것들을 보고 인식하게 해주는, 박진아만의 세상을 관찰하는 안경이다. 박진아의 작업에서 사진의 기능은 딱 그 지점, ‘전환의 상태’에 놓인 이미지를 포착하고 기록하는 데에 그친다.
‘회화는 이미지이자 물질’이라고 간결하게 회화를 규정하는 작가는 회화의 고유한 물질성에 집중한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화면과의 물리적 접촉을 거듭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만큼, 카메라가 포착한 우연의 찰나가 캔버스 위에서는 상당한 시간에 걸쳐 구축된다. 무심코 지나칠 뻔한 찰나의 순간이 새로운 물질성과 시간성을 입게 되는 것이다. 한 인물이 여러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한 인물이 한 작품에 여러 번 등장하기도 하는 등 여러 장의 사진을 조합해 하나의 구도로 만들어 담는 박진아의 그림은 시차가 있는 사진들을 자신만의 회화적, 화가적 시점으로 재조합한 결과물이다.
전시장 초입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화폭 안에서는 갤러리의 어느 직원이 작품을 포장하고 있다. 실제로 작가가 작년 국제갤러리 부산점을 방문했다가 찍은 현장 사진에서 출발한 장면이다. 이목구비의 묘사도 없이 멀리서 바라본 형상이지만, 그의 동료들은 인물의 자세만으로도 그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애정 어린 묘사다. 박진아의 회화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껴간 순간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인물을 소중히 담는다. 작업실의 그림을 둘러보며 “저도 그려주세요”라 투정하는 이에게 작가는(포착할 만큼 매력이 있으려면) “그럼 일을 하고 계셔야 해요”라 답한다. 의도적인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동작을 그리고 싶다 고백하는 작가는 개별적인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에 무감한 채로 자신의 행동에 집중하는 순간의 시공간을 품는다.
박진아( b.1974 )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런던 첼시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합정지구에서 열린 《사람들이 조명 아래 모여 있다》(2018), 교보아트스페이스 《백스테이지》(2018), 하이트컬렉션 《네온 그레이 터미널》(2014), 성곡미술관 《스냅라이프-성곡 내일의 작가》(2010) 등이 있다. 또한 2001년 정독도서관에서의 《무한광명새싹알통강추》를 시작으로, 인천아트플랫폼(2021), 뮤지엄 SAN(2020), SeMA 창고(2019), OCI미술관(2016, 2014), 삼성미술관 플라토(2015), 뒤셀도르프 Plan.d(2015), 국립현대미술관(2015), 아르코미술관(2014), 뉴욕 두산갤러리(2013), 제주도립미술관(2010), 베를린 주독한국문화원(2010), 사비나미술관(2009), 2008년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외 유수 기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고 있다. 2010년에는 에르메스 재단이 후원하는 에르메스 미술상 최종후보로 선정된 바 있으며,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대구미술관, 금호미술관 등 여러 주요기관이 소장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작업한다.
국제갤러리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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