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KUKJE GALLERY
2022. 6. 9 -8. 21
유영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 유영국
국제갤러리는 오는 2022년 6월 9일부터 8월 21일까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 Colors of Yoo Youngkuk 》을 국제갤러리 K1, K2, K3 전관에서 개최한다. 유영국 작고 2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본 전시는 2018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유영국의 주요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이번 전시는 특히 다채로운 추상미술과 조형 실험의 궤적을 중심으로 시기별 대표 회화작품 70점, 드로잉 22점, 그리고 추상 작업의 일환이자 새로운 기법과 시도를 보여주는 1942년 사진 작품 및 작가의 활동 기록을 담은 아카이브 등으로 구성된다.
유영국은 근현대사의 격동기인 1916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나 식민기 제국 문화의 중심지였던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한 후 처음 추상미술을 접하게 된다. 당대 전위적 예술 운동의 최전방이었던 추상미술의 대가 무라이 마사나리, 하세가와 사부로 등과 함께 자유미술가협회, 독립미술협회, 신조형예술그룹(Neo Beaux-Arts Group) 등 다양한 단체와의 교류를 시도하며 20세기 전반의 전위적인 당대 미술 경향이었던 초현실주의, 추상미술에 깊이 매료된다.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인 1941년에 일제 대동아 공영권(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선언으로 강화된 군국주의 정책과 전위미술에 대한 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모색하던 유영국은, 경주 남산 불상을 소재로 한 사진 콜라주 연작을 시도한다. 새로운 예술적 기법뿐만 아니라 표현적 다변성을 고심하던 작가는 오리엔탈 사진학교(Oriental Photographer’s School)에서 수학하며 사진을 통한 새로운 조형 질서를 탐구함과 동시에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 조형 요소를 중심으로 구축된 자연 추상이라는 자신만의 추상세계관을 설정한다. 태평양전쟁이 절정이었던 1943년에 귀국한 유영국은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기간 동안 고향인 울진에서 한 가족의 가장으로, 어부로, 그리고 양조장 경영인으로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작가는 틈틈이 작품을 제작하며 신사실파(1948, Sinsasilpa/New Realist Group), 모던 아트협회(1957), 현대작가초대전(1958), 신상회(新象會, 1962) 등 한국미술 단체를 두루 이끌며 생업과 작품활동을 힘겹게 지속했다.
마흔여덟 살이 되던 1964년에 모든 미술 단체활동을 중단한 유영국은 개인 작업 활동에 몰두하며 전업미술작가가 된다. 이 시기에 발표된 다양한 드로잉과 산을 모티브로 한 대형 사이즈의 추상회화들은, 그가 “잃어버린 시간”이라 일컬은 지난 20년을 만회하려는 듯, 압도적 집중력과 에너지, 대담한 구상과 화체(畵體)를 통해 풍경과 마음의 심연을 심도 깊게 표현한다. 1964년 첫 개인전을 개최한 후 유영국은 색채를 서서히 쌓아 올리고 두텁게 만드는 등 철저히 계산된 구도와 색채의 선택을 통해 작가적 세계관의 외연을 확장해 나간다. 특히 이 시기에는 비정형(非定型)적 추상에서 기하학적 형태로의 전회가 두드러지는데, 빨강, 파랑, 노랑이라는 삼원색을 기반으로 군청, 초록, 보라, 검정 등 다양한 색채 변주도 함께 일어난다. 마치 강렬한 색채를 바라보다 잠시 눈을 감으면 일어나는 색채의 잔상처럼 유영국의 창발적 색채(colors of emergence)가 불러일으키는 지속된 색채의 순간들은, 미묘한 변형(variation)을 통해 그 긴장감과 보색의 조화, 색채의 깊이와 공감각을 동시에 부여하며 색을 통한 추상회화적 미학의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이는 전업작가로서 절제의(abstinent) 삶을 지향하던 작가의 개인적 철학에 내재한 절대적인 것을 향한 욕망, 미적 절정(aesthetic catharsis)을 향한 집요한 의지와 부단한 조형 실험, 추상의 근원과 정수(the origin and essence of abstract)를 탐구하기 위해 조형의 기본 요소들을 끊임없이 고심한 그의 구도자적 삶의 궤적을 반영한다.
이번 전시 《 Colors of Yoo Youngkuk 》은 산과 자연을 모티브로 강렬한 원색과 기하학적 구도로 절제된 조형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영국 작품만의 예술사적 의미를 조망하는 자리다. K1에서는 작가의 대표작 및 초기작을 중심으로 유영국 세계관의 쇼케이스를 보여준다. 그중 창을 통해 삼청동 풍경을 면한 앞쪽 전시장은 유영국의 색채 실험과 조형언어를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는 대표작들로 꾸려진다. 안쪽에 위치한 전시장은 고유의 색채와 추상 구도를 통해 독자적 미학과 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한 50년대 및 60년대 초중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이 공간에서는 특히 자연의 요소를 추상적 형태로 변환해 더욱 단순화된 형태와 유화의 재질감(마티에르)을 살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K2에서는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집요하게 천착해온 점, 선, 면, 형, 색이라는 기본적인 조형 요소가 완숙기에 이르러 색채와 구도의 완급을 통해 자연의 원형적 색감을 심상으로 환기시키는 추상 조형작들을 중심으로, 강렬하고, 원초적이며, 서사적이고, 균형 있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중후기 작품들이 선보인다. K2의 2층은 1942년 경주 사진 연작 및 다양한 드로잉, 작가 활동 아카이브 사료로 구성되며, 그간 작가가 끊임없이 구축해온 조형 언어와 다양한 시도를 담은 밑그림, 그리고 이를 토대로 구축된 자연 추상의 세계관을 다양한 화폭으로 담아낸 회화들이 자리한다. 70년대 후반 심장박동기를 달고 죽음의 문턱에서 삶으로의 회귀를 반복한 작가의 오랜 투병 생활 끝에서 탄생된 평화롭고 서정적인 회화들은 완벽한 평행 상태를 은유하기라도 하듯 따스한 생의 빛으로 관객들에게 색채의 잔상처럼 투영된다.
한편 K3에서는 기하학적 추상과 조형 실험이 절정에 달했던 60년대 중후반 및 70년대 초기작이 소개된다. 어떤 단체의 활동에도 가담하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하면서 절제된 감정과 순수한 조형에의 창발적 의지가 화면에 전면 부각된 회화작품들은 초록, 파랑, 군청 등 다양한 색채 변주를 통해 선, 면, 색으로 이뤄진 비구상적 형태의 자연을 거침없이 담아내고 있다.
《 Colors of Yoo Youngkuk 》전은 유영국의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적 추상의 실험 및 변형 과정 등 작품 세계 전반을 망라하는 동시에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식민, 해방, 전쟁, 냉전과 반공 시기를 관통하며 현실적 예속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작가적 존재 의미를 되묻고 새로운 예술적 실천 방식과 창작 방법을 모색한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의 추상 미술 스펙트럼을,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안에 내재한 자연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고자 한다. 마치 마음으로 본 것 같은 추상 현실의 풍경을 통해, 유영국은 지금도 우리에게 풍경없이 풍경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일깨워준다.
1916년 강원 울진(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1938년 일본 동경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하였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 1966년부터 1970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정교수로 재직하였고, 《국전》 서양화 비구상부 심사위원장과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탄생 100주년 기념전 《유영국, 절대와 자유》, 1979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개인전 《유영국 초대전》, 1964년 신문회관 개인전 등이 있으며, 1978년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의 《살롱 드 메 초대전》, 1967년 제9회 도쿄비엔날레, 1963년 제7회 상파울로비엔날레, 1937-1942년 동경 《자유미술가협회전》 등 수많은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1984년 보관문화훈장, 1938년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전》 협회 최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경기도미술관 등에 주요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작가는 지난 2002년에 작고하였다.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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