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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빈. 들

2021. 11. 18 – 2022. 1. 10
이진우

리안갤러리 서울은 2021년 11월 18일부터 2022년 1월 10일까지 약 2달간 숯과 한지의 화가로 불리는 이진우 작가의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해당 전시에서는 Le temps. Vide. L`Espace (시. 빈. 들/ Time. Empty. Space)의 부제로 동양과 서양의 감각들을 가미한 23점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감상자가 작품과 소통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아무것도 표현되지 않고 비어있는 것, 그리고 그 비어진 공간에서 작품에 이입되는 감상자와의 소통이 이번 전시의 의미이다.

Untitled_127 x 167cm_2020-21_Mixed media with hanji on linen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진우 작가는 1983년 프랑스로 건너가 1989년까지 파리 8대학과 파리 국립 고등미술학교에서 조형미술학과 미술재료학을 전공하였다. 80년대 프랑스를 휩쓸던 아방가르드 전위예술에 심취하기도 했고 그 과정을 거치며, 세월이 흘러도 살아있는 이진우 작가만의 내밀한 정체성을 창조하게 되는데 그의 끈기와 고된 노동의 산물이 우리가 주목하는 가장 추상적인 형태의 단색화 주류가 되었다. 내면의 단단한 자아를 치밀하고 풍부한 질감의 단색화로 작업한 작품의 구상은 한지와 숯을 한 겹 한 겹 포개기를 반복하며 작가가 원하는 이미지로 연출할 때까지 무한대의 과정을 반복하는 인고의 산물이다.

자신을 비우고 가장 가치 있는 그 어떤 것으로 내면을 채우는 작가의 바램을 담고 있는 작품들은 작가의 설명을 통해 작업과정에서의 고된 노동의 흔적이 엿보인다. 그의 거친 손과 팔뚝은 `30여년의 작품과정에서 생긴 노동의 흔적으로 자연적으로 근육이 붙었다’ 라고 한다. 이진우 작가의 작업은 아크릴 용액을 바른 천 위에 무작위로 숯이나 목탄을 뿌리고 그 위에 한지를 덮어 쇠 브러시로 문지르고 긁어내는 행위를 반복한다. 한국의 멋과 전통을 자랑하는 한지와 숯, 목탄이 응어리지고, 또다시 한지를 입히는 과정에서 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묵직해 진다. 보통 한 작품에 한지를 10번 정도 덮고 갈아내는 데, 많을 때는 20~30번을 반복한다 하니, 그의 작품에 드는 노동의 강도를 상상할 수 있다.

그는 왜 이런 힘든 작업을 하는 지 설명한다. “한지를 덮고 브러시로 긁어내는 과정을 통해 제가 사라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한지를 덮는 것은 저를 무효화 시키는 행위구요, 흰 눈으로 사물을 덮듯 제 자신의 추한 것, 모자란 것, 부끄러운 것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덮으려 한 것입니다. 원래 저의 이탈하려는 마음과 더불어 브러시로 긁어내고 더럽고 추한 것들이 떨어져 나가길 바랬지요.” 그가 숯과 한지로 만들어낸 풍경은 매우 독특한데, 하얀 안갯속과 거대한 어둠의 공간이 공존하며 희뿌연 회색 빛 여명과 장엄한 기운을 내뿜는 풍광이 넘쳐난다. 그 속에 자아의 존재감은 흐려지고 새롭게 어우러지는 단단한 무욕의 평화가 깃든다. 힘든 노동을 통해 작가 자신을 비우고 또 다른 자아가 채워져 더욱 고고한 혼이 깃든 단색화 표현 예술로 우리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Untitled_164 x 132cm_2021_Mixed media with hanji on linen

이진우 작가는 프랑스에서의 작업활동을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 미술계에서는 유행을 좇기보다는 자기정체성이 분명한 작가를 인정해줍니다. 동양이나 서양 중 한 곳이 더 우수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20세기 이후 서양미술에서는 회화가 침체된 반면에 한국 작가들은 아직도 단순하고 담백하며 명상적인 단색화를 꾸준히 양산해 내고 있습니다. 한국 미술이 지닌 강점인데 수묵화, 특히 남종화의 여백 미나 선비적 정신을 현대미술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진우 작가에게 오랜 외국 생활에서 고국을 잊지 않게 해준 한지와 숯은 우리나라 고유의 소재인 동시에 인간 이진우와 한민족의 문화유산을 국제무대에 알리는 자랑스런 소재였다. 그러한 작업과정에서 가난했던 예술가의 삶은 언제나 훌륭한 작품으로 승부했고, 대한민국 단색화의 아버지인 박서보를 잇는 `한지의 거장`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박서보 화백이 영국 화이트큐브 개인전 때 직접 이진우 작가를 언급하며 관계자들에게 작품을 보여준 일화가 있다. 앞으로 한국을 대표할 작가라고 소개를 했는데 이를 계기로 국내 작가로는 이우환, 김환기에 이어 2017년 일본 동경갤러리에서 이진우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번 리안갤러리의 Le temps. Vide. L`Espace (시, 빈, 들/Time, Empty, Space)전시회는 무채색의 특별한 감각을 자랑하는 화가 이진우와 소통하며,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는 얼마 남지 않은 아름다운 가을 공간의 장이 되길 바란다.

리안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12길 9
02-730-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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