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GALLERY MARK
2022. 9. 15 – 10. 22
남종현
송진협 (미술평론)
사진(寫眞)이라는 말은 영어의 포토그래프(photograph)와 차원을 달리하는 언설이다. 포토-그래프가 빛[photo]으로써 그려낸다 [graph]는 단순히 기술적 설명인데 반하여, 사진이란진리[眞]를 묘사[寫]한다는 뜻으로 이 장르의 예술적지향점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과연 찰나의 그림자인형놀이 같은 사진이 어떻게 진리를 그려낼 수 있는가? 전시장을 가득 메운 이 목조각 사진들은 도대체 무슨 진리를 형언하고 있다는 것인가?
철학자 마르틴하이데거는 일찍이 그리스어 아레테이아(aletheia)에서 진리경험의 원형적 모습을 찾아내었다. 그에게 진리란 탈-은폐로서 현시한다. 우리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의미와 관념으로 가득한 단일하고 폐쇄적인 체계이다. 남종현의 꼭두 연작에서도 이 낱낱의 목조각들은 본래 거대하고 화려한 상여장식체계의 일부였다. 복잡한 우주관으로 엮인 이 거대한 장의 미술세계에서 개별 꼭두들은 촘촘히 계획된 상징들의 일부를 각각 수행한다. 세상에는 실로 많은 꼭두들이 있으나 사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개별조각상으로서 꼭두라기보다는 상여가 보여주는 현란한 장의미술세계이다. 이 거대하고 종합적인 상징의 질서에서 꼭두는 그저 대체 가능한 일부분이기에 잘 드러나지도 주목 받지도 못한다. 꼭두의 존재는 복잡하고 화려한 행렬 속에 파묻혀 은폐되는 것이다.
그러나 장례행렬이 명부의 강레테(Lethe)에 도달하는 순간, 큰 존재론적 사건이 발생한다. 상여 행렬이 이 망각의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순간, 세계를 지탱하던 의미체계전체가 와해되고 잊혀진다. 오랫동안 전승되던 상여제작이 단절되고, 조직적으로 구성된 장식구성체가 낱낱이 뜯겨져 팔려나가는 참담한 순간이다. 상여를 구성하던 정연한 상징체계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수많은 꼭두들의 원래 위치와 상징적 역할 또한 모두 잊혀지게 된다. 서커스 행렬 중 공중제비돌기를 하던 한명의 꼭두는 본래의 위치에서 떨어져 나온 나머지 물구나무 서기하는 듯 괴상한 형상의 이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미술사학자들의 비명과 수집가들의 탄식이 터져 나오는 그 순간, 놀랍게도 꼭두들은 그간 그들을 은폐하고 있던 세계를 깨고 드디어 참된 개별자의 진정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탈-은폐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예술사전에서 꼭두는 상여장식이라는 상위언어 체계를 매개로 하여서만 서술되고 정의된다. 길안내, 호위, 재롱, 시중이라는 기본적인 장의예술의 고정된 카테고리를 꼭두들은 재생산할 뿐이다. 때문에 상여 혹은 적어도 전통장의미술이라는 관념의 체계를 벗어난 꼭두는 도무지 기술할것이 없는 무의미의 빈터로 던져질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남종현의 꼭두가 있다. 남종현은 꼭두를 얽어 매던 상여의 전체적 도상체계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차라리 어느 밝은 빈터에 죽음과 망각을 에돌아 그의 꼭두가 온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체계전체가 망각 속에 휩쓸려간 그 순간에 순수한 모습 그대로 꼭두의 현존재들이 걸어 나온다. 인습적으로 반복되던 거대한 상징과 관념과 질서가 물에 쓸려나간 바로 그 순간, 잘 보이지도 않던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개별자로서의 꼭두가 새로운 관심과 삶과 존재와 진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한동안 세계는 잘 짜인 국제무역과 금융 질서 속에 평온하였으며 모든 개별국가와 개인들은 드러나지 않은 채 조용히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여왔다. 이제 소스라치는 팬데믹의 범람 속에 우리는 그간의 모든 관념과 질서가 휩쓸려나간 세계를 본다. 한 세계의 죽음, 조각난 알 껍데기를 딛고 그 속에 편안하게 안겨져 있기만 했던 우리의 현존재가 이 헐벗고 열린 공간속에 던져져 나와 현시될 것 이다. 이제 새로운 역할과 시공간속에 우리자신의 현존재와 진실한 모습을 개방해야 할 시간임을, 이 꼭두의 단촐한 행렬들이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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