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WOOSON GALLERY
2022. 6. 9 – 9. 8
강경구
강경구의 고아한 작품 세계를 주도하는 것은 다채롭고 역동적인 자연 속 유기체가 거침없이 자생 성장하는 강렬한 생명의 기운이며 삶에 대한 열망이다. 그러나 그는 풀, 나무, 엉클어진 덤불, 그늘진 숲, 나는 새들, 그리고 어둡고 깊숙한 산길을 감각적인 기교나 치밀한 모사로 재현하는 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질적 요소들이 끊임없이 병렬적으로 존재하며 스스로를 조직하는 자연의 불가사의한 힘을 드러내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강경구의 작품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더구나 강경구의 그림 속 모든 요소가 끊임없이 은유와 환유를 연상시켜 무한하게 변화, 연동 작용하는 작품의 기본적인 가변성(fluidity) 때문에 자연계 현상과 더욱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강경구의 작품 안에는 빛과 그림자, 눈부시게 밝은 곳과 미스테리한 어두움, 명백함과 애매함, 투명함과 불투명함이 교차하면서 무한한 확산성을 지닌 예술이라는 자유 연합 free association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동의 경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강경구의 ‘숲’은 ‘미지의 땅’ terra incognita의 발견을 암시하는 신비한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라고 해석될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특히 고전 문학에서 심리적 경험의 은유적 영역으로 잘 알려진 깊고 어두운 숲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 생명의 비밀을 품은 불가사의한 세계, 두려움과 자기성찰의 장소 등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는데, 강경구는 이러한 ‘숲’이라는 거대한 메타포를 묵묵한 웅변가처럼 찬란한 빛을 통해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숲의 문학적 가변성이 암시하는 불확실함, 불투명함, 불안함, 두려움 등의 부정적 기운을 강경구의 숲은 전달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그의 작품이 가변적이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이유는 자연이 타고난 본성 그대로 강렬한 삶의 욕구를 가지고 다른 것들과 뒤섞여 상생하며 어울려 생존하는 모습, 즉 우주의 만물이 그렇게 실재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빛의 효과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강경구의 회화에 더욱 풋풋한 생동감을 불어 넣는 것은 예기치 않은 지점들에서 목격되는 거장의 노련하고 지나치지 않은 채색,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작고 하찮은 풀이나 꽃이 각자의 고유성과 엄밀한 차별성을 부여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강경구의 작품 중에서 거의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거대한 민들레는 끈질긴 생명력과 삶의 본성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리를 잡고 모습을 드러내는 그 작은 민들레는 아무리 밟히고 뽑혀도 며칠 뒤면 보란 듯이 기특하게 다시 솟아오른다. 오히려 작아서 삶의 의지가 더 간절하고 애틋하기도 하지만 작을수록 다산의 속성과 넘치는 생명력을 가졌다는 것을 어쩌면 작가는 이미 잘 알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듯하다.
또한 어떤 작품에서는 장난스러운 깜짝 선물처럼 숲속 한가운데서 소파 sofa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숲속에 있을 리 없는 비현실적인 사물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는 강경구의 숲이 단지 숲(산수화 같은)에 지나지 않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수의 작품에서는 숨은그림처럼 인간이나 동물로 보이는 존재가 불현듯 나타나 어두운 숲속에 잠재된 신비한 이야기와 미지의 사건을 암시하며 작품의 시각적, 상상적 공간을 채우며 다층적인 시각적 드라마를 전개해 나간다. 이런 의미에서 강경구의 ‘숲’은 자연 속 크고 작은 온갖 생명체들이 생기 넘치는 삶의 행진을 함께하는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누구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가 본 적 없지만 걷다 보면 우리의 운명과 마주하게 될 장소로서 ‘숲’이라는 거대한 메타포를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도록 우리를 안내하는 것이다.
2022년 5월 큐레이터 이은미
우손갤러리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2
053-427-7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