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박노완
박노완은 거리를 배회하며 발견한 사소하고 기이한 풍경을 그린다. 깨진 주차금지 표지판, 군복 입은 마네킹, 미용실 앞 빨래 건조대, 인삼 모양 조형물처럼 누군가의 왜곡된 취향과 무관심이 뒤섞여 사회의 단면을 이루는 대상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충실히 재현하는 대신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해 일부러 모호한 얼룩과 흔적으로 남긴다. 이를 통해 쉽게 읽히고 사라지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잠시 멈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회화를 선보인다.
박노완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조형예술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갤러리기체 등에서 개인전을 열고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꾸준히 펼쳐왔다. 2024년에는 ‘종근당 예술지상’ 수상 작가로 선정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박노완 작업의 핵심은 독특한 작업 방식에 있다. 그는 수채 물감에 아라비아고무를 섞어 사용하는데, 이는 물감이 완전히 마르지 않고 표면에 얇은 막을 만들게 한다. 작가는 이 특성을 이용해 칠한 것을 다시 닦아내고 그 위에 덧칠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거치며 대상의 모습은 파편화되고 모호해진다”고 말한다. 선명했던 처음의 형상은 불확실한 얼룩과 자국으로 변해간다. 작가는 “이 지루한 변명 같은 과정이 회화를 재현이 아닌 ‘자기반성적 공간’으로 만든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작가는 “그림 그리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낄 때 무력해지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는 막연한 불안함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작은 성취들을 쌓아가려 한다”며 작업을 지속하는 힘을 이야기한다. 그의 그림에 담긴 ‘김빠진 농담’ 같은 허무함과 자조적인 태도는, 불안한 현실을 견디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작가의 솔직한 모습과도 겹쳐진다.
이번 Kiaf에서 그는 뚜렷한 이미지 대신 누적된 흔적과 얼룩이 가득한 신작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스스로 소극적인 태도를 가졌지만, 작업을 통해 타인과 연결될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고, 선명한 정의를 내리기보다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기를 택한 젊은 화가와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포토존, Watercolor on canvas, 170x138cm, 2023
소화기들, Watercolor on canvas, 116.8x80.3cm, 2023
동상들, Watercolor on canvas, 170x138cm,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