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나
이만나 작가는 익숙한 일상 속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비일상적 체험을 다루게 된다. 예컨대 금호터널 입구 뒤 산동네에 아파트가 올라가는 모습, 흙먼지가 쌓인 학교 테니스 코트, 밤에 보게 되는 아파트의 풍경에서 느껴지는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대표적이다.
“도로를 만들기 위해 절개된 산자락, 아름다운 숲이나 평야 사이로 불쑥불쑥 솟아 있는 고층 아파트들. 언제나 건설적인 이곳의 속도감은 위협적이지만, 또한 우리에겐 지극히 익숙하고 평온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충된 감정과 이질성의 묘한 조화가 바로 우리의 현재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이런 과도적 풍경을 한국의 미(美)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이 작가는 미술학원 강사로 돈을 모은 뒤 독일로 떠나 브라운슈바이크 조형예술대에서 디플롬과 마이스터슐러를 졸업했다. 모두가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을 할 때도 그는 고집스레 회화에 천착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종근당 예술지상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사실주의 그림을 뛰어넘는 ‘초현실적 감각’이 느껴진다. 너무나도 사실주의적인 접근이 오히려 풍경에 대한 고정관념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흐린 날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빛, 뿌연 미세먼지나 안개, 어두운 밤 희미하게 비치는 조명 등을 세밀하게 화폭에 담았다. 실제로 봤지만 머릿속에서 기억하지 못했던 장면들이다.
이는 오랜 시간을 들여 섬세하게 디테일을 표현한 덕분이다. 색을 아주 얇게 덧칠하는 ‘글레이징’ 기법을 쓰는데, 유화물감으로 일종의 반투명한 막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보는 각도에 따라 빛 반사가 달라져 심도(깊이감)가 제각각이다. 이 작가가 “내 작품에 담긴 깊은 시간성과 울림은 사진에 온전히 담기지 않으니 꼭 실물을 직접 보러 오라”고 하는 이유다.
물감을 덧칠하고 말리기를 반복하니 주 5일을 하루 평균 12시간 넘게 작업하는데도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데 최소 두 달이 걸린다.
“과연 이 고행의 산물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나, 과연 다른 이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 던집니다. 작업 과정이 힘들고 오래 걸릴수록 확신은 더 약해지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실로 향하는 건 아직 제가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의 일렁임을 느끼고 공감해주는 관객분들도 제 작업의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제 작품을 통해 비일상의 순간을 경험하고, 낯설고 신비로운 이 세상의 이면을 보는 시선을 갖게 되셨으면 합니다.”
이만나 작업실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