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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색의 중첩

2022. 8. 6 – 8. 26
하태임, 국대호, 김태호, 전병삼

하태임, 국대호, 김태호, 전병삼 작가는 선이 가진 시작과 끝을
하나로 포개어 순간 순간을 새기며 반복한다.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남겨진 선,
그리고 의미의 공백들이 조화를 이루어 작품을 만들어낸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그 중첩의 세계로 들어가
선과 색에 새겨진 작가의 시간과 생각들을 느껴보고자 한다.

하태임 작가의 대표작 ‘Un Passage’ 시리즈는 화폭을 형형색색의 색띠로 채운 추상화 작품입니다. 매끄럽게 바탕색을 칠한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곡면의 색띠를 여러 번 덧칠해 도톰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사용하는 색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촘촘한 듯 빼곡히 화면 곳곳을 채우는 곡선의 색띠들은 관람자에게 묘한 리듬감을 전달하며 한국 추상화에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아오고 있다.
작가는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인 사랑과 희망, 슬픔, 그리움 등을 하나하나의 색띠로 표현하며 ‘회색의 공간에 반짝거리는 작은 희망을 투영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실 같은 색이라도 어떤 색 위에 올리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고, 나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혀요.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색은 표현 방식에 따라 다양한 말을 하고요. 색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아요. 여러 겹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시작하면 완성까지 두 달 정도 걸려요. 그 대신 한 번에 한 작품만 하는 건 아니고 작업실 공간이 허락하는 만큼 여러 작품을 펼쳐놓고 돌아가면서 작업하죠. 색띠가 곡선으로 표현되는 건 그리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선이기 때문이에요.”

-하태임 작가 인터뷰 中-

국대호 작가는 여러 도구를 사용하거나 물감 튜브를 직접 짜는 방식을 통해 유채 물감의 질감을 서로 다르게 만든다. 물감 덩어리가 액자에서 삐져나와 공간에 머무는 모양은 작가만의 고유 기법이다. 국대호 작가의 전시작은 수많은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색의 향연을 펼친다. 색과 색이 서로 스며들고, 색 위에 색이 놓이고, 색과 색의 융합으로 새로운 색이 나오면서 색깔 숫자조차 헤아리기 어렵다. 사람이 분별할 수 있는 색의 수가 약 800만 종류나 된다고 한다. 캔버스에 색을 매개체로 관계를 모색한다.

“추상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색을 주제로 끊임없이 작업해 온 나는 색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표현들을 지속해 왔다. 과연 나는 왜 그런 컬러들을 지속적으로 표현해 왔는가 하는 문제 제기를 스스로에게 해본다. 스트라이프 초기 작업에서는 색과 색이 수직적 형태로 만나 이루어내는 강렬한 발산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각각의 색채가 만나 생성된 그 경계는 미묘하고도 다양한 색의 변조로, 이질적 세계가 생생한 역동성을 느끼게 하였다.”

-국대호 작가 작가노트中-

김태호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단순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다양하면서도 일련의 패턴과 규칙이 돋보인다. 마치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마음처럼, 전부 같아 보이다가도 제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다. 단조로울 수 있는 거대한 색의 평면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칼로 깎아낸 면 곳곳에서 드러나는 무수한 색과 선, 그로 인해 생겨나는 복잡하고도 규칙적인 격자무늬 공간을 포함하고 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한 점의 색면 추상 작품같지만, 가까이서 보았을 때 작품에서 느껴지는 깊고 세세한 격자무늬 공간은 관람자에게 일종의 아이러니를 선사해 준다.

“나의 작품에 대해 논할 때면 가장 흔히 듣는 말이 ‘장인정신’, ‘일관성’, ‘작품구상 초기부터 철저하게 계획된’과 같은 말들이다. 물론, 계획하고, 계산하고, 구상하면서 내가 가진 역량이나 심상을 최대한 나타내고자 하긴 한다. 그러나 계획보다 더 큰 선물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예술작품이다.

수 많은 색들을 바르고 입히고 덮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거듭하고는 허무하기 짝이 없게도 그것들을 다시 깎아낸다. 이 때 내면의 색층들이 드러나게 되면 작품에 녹아난 인간의 심상들이 여지없이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최근 작품들은 초기작들보다 점점 색층이 늘어나기도 하고 더욱 다양한 밑 작업이 생기기도 한다. 살아온 날의 연륜만큼 경험도 느낌도 배가되기 마련이니 작품도 농밀해 진다고 보인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모노크롬의 거대한 평면에, 칼로 깎아낸 면마다 드러나는 무수한 색들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복잡하지만 규칙적인 많은 격자무늬 공간들로 묘한 아이러니를 선사해 주는데 이것이 내 작품관을 관통한다.
단순하면서도 단색의 색면처럼 지루하지 않고, 다양하면서도 일련의 패턴과 규칙이 있어 복잡하지만은 않은 인생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인간들 군상처럼… 그들의 마음처럼… 그 많은 작은 방들이 똑같은 것이 없고, 아주 전혀 다른 모양도 없다. 전부 같아 보이지만 각각 다른 모양이고, 제각각 모두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패턴이다.”

-김태호 작가 작가노트中-

전병삼 작가의 작품은 하나의 물체를 적게는 수백개, 많게는 수백만개의 이미지로 변형, 반복, 재배열 한다. 수천장의 인쇄물을 반으로 접어 변형시키고 쌓으면 결국 원래 물체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접은 인쇄물의 단면들이 모여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다. 접기와 쌓기라는 작업방식이 사진의 서술성을 사라지게 하고 추상적 화면 드러내기로 나타나 작품이 탄생된다. 이러한 작업과정과 작품을 통해 우리의 숨겨진 사회적 관습과 가치를 되돌아 보게 한다.

“나는 미지의 세계를 갈망해 왔다. 미지의 세계는 우리가 아직 방문하지 않은 곳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제한된 몸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세계. 나는 많은 미지의 것들에 끌린다. 미지의 세계일수록 역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라고 믿는다. 존재의 이유가 있고 우리의 현재가 아름다울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생각과 신념이 나의 창조력의 원동력이다.”

-전병삼 작가 작가노트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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