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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새어버린

최수현

Installation view of ‘Already Deflated’ at GALLERY2

전시를 보기 전에 우리가 상기해야 할 작품이 있다. 바로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의 <예술가의 숨>(Artist’s Breath)이다. 현재 이 작품은 빨간 풍선의 잔해 상태로 남아 있다. 풍선이 부착된 나무 받침대에서는 작가의 이름과 제목이 새겨진 금속 명판이 있다. 1960년, 만초니는 ‘내가 풍선을 불 때, 나는 이 오브제에 내 영혼을 불어넣어 불명의 것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이 작품에 예술가의 ‘숨’은 없다. 그의 ‘영혼’이 모두 빠져나간 풍선은 유머러스한 역설이 되었다. 자기 신체를 물신화, 상품화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예술적 창조의 체념, 예술의 자본화에 대한 조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실패감을 증거한다. 그래서 숨결이 빠져나간 풍선은 비극이자 희극이다. 최수현의 작품은 팔 수 없는 예술가의 숨을 팔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한 만초니의 시도를 다시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작품의 실체와 본질은 없어졌지만, 부수적인 요소들만 남아서 작품을 이루는 상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사유하는 것이 그의 작품이다.

바람이 새어나간 뒤 After Deflation, balloon, resin, light, stainless steel frame, 24.5×24.5x2cm, 2023

60년이나 지난 만초니의 작품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작품을 통해 던진 질문들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어쩌면 미술계의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그 질문은 영원히 유령처럼 미술계를 떠돌 것이다. 작품의 생산은 소비(혹은 향유)와 유통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각적 폐기 혹은 휘발을 목표로 했던 작품도 그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예술가들은 고민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이 고민은 매우 철학적이지만 한편으로 매우 현실적이다. 최수현은 그동안 문화적 정체성, 인종, 젠더, 언어 등 자신이 경험한 상황을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그는 삶과 예술을 떨어트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의 가치와 미술계의 시스템에 대한 고민 역시 자신이 예술가로서 경험한 상황, 즉 삶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새어버린 Already Deflated, 2K single channel video, 13’05”, 2023_still cut 1

전시명이자 영상 작품의 제목인 <이미 새어버린>(Already Deflated)은 작가가 만초니의 <예술가의 숨>을 생각하면서 시작한 작업이다. 만초니의 작업은 사실 풍선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숨결이 중요하지만, 결국 그의 숨결이 빠진 풍선 잔해들이 ‘작품’으로 남았다. 아무리 미술이 비물질화 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냥 놔두지 않는다. 사진, 영상, 텍스트와 같은 기록이나 오브제와 같은 잔해들에 의해서 그 존재가 증명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술의 상업화를 거부하고 비물질화를 외친 작품들 역시 미술시장으로 흡수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재미있게도 갤러리에서의 전시가 결정됐을 때, 만초니의 작업이 떠올랐다고 한다. 만초니는 풍선 안에 든 숨을 팔려고 했다. 하지만 최수현은 자신의 숨이 빠져나간 풍선을 팔려고 한다.

이미 새어버린 Already Deflated, 2K single channel video, 13’05”, 2023_still cut 2

<이미 새어버린>은 런던의 한 공원에서 풍선에 가스를 넣고 하늘로 띄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중간에 작가의 2017년 작품인 <Balls and Balloons> 영상이 등장한다. 만초니의 작품에서 출발했지만, 풍선이 등장했던 본인의 예전 작업이 떠오른 것이다. <Balls and Balloons>은 아테네에서 촬영한 영상이다. 작가는 아테네의 풍선을 파는 사람에게 풍선을 몽땅 사서 그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작가가 풍선을 파는 노동을 대신한다. 풍선을 들고 번화가를 배회하는 작가는 스스로 풍선을 파는 노동자인지 예술가인지 혼란스러워한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창작 행위라고 불리는 예술가의 노동 행위에 대한 의미 혹은 그 가치를 반문하는 작업이었다. 이 두 작업은 쓸모없는 무용한 행위를 통해 예술가의 노동 활동, 예술 행위의 가치, 예술과 자본의 교환 상황을 ‘풍선’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풍선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작가는 사람들이 풍선을 사는 것은 ‘환상’을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테네에서 풍선을 파는 노동자는 뜨거운 태양 아래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그에게 풍선은 인간의 욕망과 예술의 환상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대리물이다.

이미 새어버린 Already Deflated, 2K single channel video, 13’05”, 2023_still cut 3

오브제 <바람이 새어나간 뒤>(After Deflation)와 <재구성된 조각들>(Recasted Pieces)은 영상에 등장한 풍선 잔해로 만든 작업이다. 만초니에게 풍선 자체는 작품이 아니었고 최수현의 2017년 영상에 등장한 풍선은 버려졌다면 이번에 풍선은 입체 작업으로 박제됐다. 오브제는 터진 풍선에 레진을 부어 굳혔다. 작가는 풍선에 이미 숨은 빠져나갔지만 가장 영구적인 재료로 오브제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작품, 즉 미술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거래될 수 있는 형태를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하나의 시도이면서 놀이다. 종이에 텍스트가 각인된 <테이트에서 온 메일>(A Mail from Tate)은 테이트 모던에서 보낸 서신이다. 만초니의 <예술가의 숨>을 실제로 보고 싶었던 작가는 테이트 모던에 요청 메일을 보냈지만, 그들은 ‘개별 물품 및 작품 전체에 가해지는 잠재적인 위험’ 때문에 관람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 작가는 관람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영상 작업을 기획했다. 계획이 무산됐을 때, 황당하기도 했지만 정말 이 ‘작품’은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미 새어버린 Already Deflated, 2K single channel video, 13’05”, 2023_still cut 4

최수현은 관람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말수가 많은 작업이다. 하지만 답은 없다. 작가 스스로 질문에 답을 내렸다면 그 질문들은 작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삶에 대한 끊임없는 의구심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 버려진 것과 남는 것 그리고 환상(예술)과 현실. 작가는 상반된 두 가지의 요소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 양극단 사이의 순환구조 말이다. 사실 작가는 그 모든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선 예술가의 날 선 창작과 무수히 많은 실패 그리고 무모한 시도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 또한 비극이자 희극이다.

갤러리2
서울 종로구 평창길 204
02 344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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