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흰
김정인
김정인의 회화는 단순한 해석을 거부한다. “그림을 한 가지 의미로 이해하는 순간 권력의 지배가 시작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열린 그림’을 지향한다.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기억의 조각들을 한 화면에 섞어 놓는 방식으로, 보는 사람이 그림 속에서 길을 잃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김정인은 목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회화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1년 이응노미술관의 ‘아트랩대전’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 지원과 성곡미술관 오픈콜에 연이어 선정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라흰갤러리, 서울시립미술관 SeMA창고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뒤섞어 그림으로 표현한다. 그는 일부러 연관 없는 사진이나 풍경, 기억의 이미지들을 캔버스 위에 콜라주처럼 펼쳐 놓는다. 쉽게 읽히지 않는 이 구조는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더 오래 그림 앞에 머물게 만든다. 작가는 “하나의 이미지를 보고 바로 의미를 찾기보다,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관객의 생각이 더 자유롭게 뻗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한다.
김정인은 작업을 통해 현실을 다시 조율하고 배열한다. 그는 “예술은 자유로운 생각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전시나 판매 같은 현실의 틀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붓을 놓지 않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어지럽고 해석되지 않는 현실의 파편들을 다시 배치하며 나만의 질서와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회화는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질문과 감각을 붙들고 씨름하는 훈련의 장이다.
이번 Kiaf에서 김정인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회화 시리즈를 함께 선보인다. 하지만 두 작업 모두 관객에게 ‘정답’을 주지 않고 잠시 멈춰서 고민하게 만드는 순간을 선물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 선 이들은 명확한 결론 대신 풍부한 질문을 품고 돌아가게 된다. 김정인은 “관람객들이 제각기 다른 그림들 앞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과 감각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스펙터클 2, Oil on canvas, 181.8×227.3cm, 2024
나무에게 가는 길, Oil on canvas, 181.8x227.3cm, 2020
이해되지 않기 위한 교란법1, Oil on canvas, 37.9x45.5cm,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