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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 일렁이는 자개의 빛, 그 뒤에 펼쳐진 ‘지옥의 풍경’

금산갤러리

김은진

 

새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괴물, 인간의 머리를 쪼아먹는 거대한 새, 귀신과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형상의 생물들…. 김은진 작가의 작품 속 각양각색의 이미지는 강렬하고 기괴하다. 다양한 색으로 초현실적 괴물들의 이미지를 묘사했다는 점에서 ‘지옥의 화가’로 불리는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1516)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공과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1998년 보다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2015년 이후 12회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김 작가는 자개농과 흑판, 동양화 물감 등 전통 재료를 쓴다. 이를 통해 살아오면서 느낀 사회적 상황, 그 속에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속해 있는 인간의 절망적 한계와 두려움, 욕망과 구원과 무의식의 세계 등을 노동집약적인 방식으로 화폭에 밀도 있게 그려낸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현대 사회의 부조리, 노화 등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Kiaf에서 선보이는 ‘신의 자리_인산인해’ 시리즈는 자개의 특성인 빛의 일렁거림을 활용한 작품이다. 다양한 인간군상과 천상계에 있는 상상의 존재들이 자개 특유의 빛 뒤에서 기괴한 모습을 드러낸다. 김 작가는 “밝고 찬란한 세상, 그 속에 존재하는 어렵고 모호한 인생이라는 대비되는 주제를 자개의 빛과 그림을 통해 입체적으로 섞은 시리즈”라고 설명했다.

 

 ‘내려오는 길’은 몽유도원도에 등장하는 금강산도를 모티브로 한지에 그린 작품이다. 다만 산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사람들의 두피가 동양화 재료로 정성껏 그려져 있다. 김 작가는 이를 ‘체모 산수’라 부른다. 그는 “‘나이가 들면 어찌 되었든 모두 비슷해진다’는 생각에서 착안해 10년 전 다양한 나이 든 사람들의 흰머리를 추상적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2023년부터 1년간 집중적으로 마무리했다”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란 존재는 나이가 들며 서서히 지워지는데, 그 쓸쓸함과 고독을 중점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서사를 구성하는 능력, 만들어낸 서사를 시각적으로 알맞게 잘 완성하는 테크니션의 두 가지 능력을 갖췄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처음부터 자신만만했던 건 아니다. “작가로 사는 건 사실 불안한 일입니다. 안정감을 느끼기를 간절히 바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불안을 극복해 보려고 꾸준히 작업을 하다 보니 많은 것들이 좋아졌고, 오랜 시간 걸려 완성된 그림을 보는 게 늘 즐겁습니다. 이때까지 걸어온 회화 인생 28년이 마치 몇 달처럼 짧게 느껴집니다. 지금 저는 충만한 감정입니다.”

 

 ‘숭고함’을 작품에 표현하는 게 그의 목표다. 이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살고,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아마도 추상적인 방향으로 더 시도를 거듭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회화는 설명하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지요. 부디 축제에 참여한다는 기분으로 제 그림을 편안히 즐겨주세요. 당신을 위해 정말 정성껏 그렸습니다. 제 작업을 발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은진, 신의 자리_인산인해 5, Acrylic, mother of pearl, wood panel, 118 × 157 × 10 cm, 2022

Artworks

Eunjin Kim, Locations of God_Once Clear 5, Oil, mother of pearl on canvas, 130 × 163 cm, 2022

Eunjin Kim, locations of God_Hordes of People 1, Acrylic, mother of pearl, wood panel, 99.5 × 208 × 5 cm,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