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9 – 8. 9 | [GALLERIES] Hakgojae Gallery
류경채, 류훈
전시 전경 (1)
학고재는 7월 9일(수)부터 8월 9일(토)까지 류경채(b.1920-1995, 황해도 해주), 류훈(b.1954-2014, 서울) 2인전 《공(空) – 존》을 연다. 류경채 작가의 추상 회화 15여 점과 류훈 작가의 조각 작품 24여 점이 출품된다. 두 작가는 부자(父子) 관계이지만, 작업은 단순한 혈연을 넘어선다.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 속에서 구축한 조형 언어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감각과 현실을 반영했다. 이번 전시는 그 미묘한 차이 속에서 어떻게 공명과 교차가 이루어지는지를 조명한다.
류경채, 날 ’82-5, 1982,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예술은 시대의 흔적을 품고, 작가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존재로서 질문을 던진다. 이 전시는 서로 다른 시간과 환경 속에서 예술적 사유를 확장해온 두 작가, 류경채와 류훈의 조형 언어를 통해 ‘존재’라는 보편적이면서 심연적인 주제를 가로지른다. 미적 응답과 조형적 전개를 통해 시대와 예술의 근본적인 연속성을 묻는다.
전시 전경 (2)
류경채는 해방 이후 한국 현대 미술의 태동기에 등장하여 자연과 인간, 삶의 조화를 탐구해왔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풍경의 묘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동양적 자연관에 기반한 생성과 소멸, 순환의 질서를 담고 있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폐림지 근방》으로 주목받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류경채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초기의 작품은 서정적 풍경에서 출발하였다. 1960년대 이후로 이어지는 비구상적 회화는 더 이상 보이는 자연이 아니라 ‘자연을 감각하는 인간의 내면’으로 이동한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모노톤의 색면 구성으로 구조미를 구축하며, 한국적 자연주의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자연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예술적 실천으로 확장시켰다. 그의 작업은 존재를 감각하는 은밀한 통로이자 중재자로 기능한다. 절제된 질서 속에서 순환과 생성의 세계를 품는다.
류경채, 날 ’85-6, 1985, 캔버스에 유채, 130x162cm
반면 류훈은 보다 실험적이고 해체적인 조형 언어로 존재의 복합성과 심연을 파고들었다. 그는 고전적 조각의 핵심인 인체를 해체하고, 기하학적 형태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가 익숙하게 봐왔던 아버지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였던 ‘구조’와 ‘구성’을 입체적으로 변주하였다. 익숙한 질서와 형식을 해체하고 낯설게 전복하는 시도를 이어갔다. 이러한 과정은 존재의 불안과 모순, 불완전성을 직면하게 만든다. 그의 작업에서 사용된 물질은 단순한 재료를 넘어 인간의 내면을 상징한다. 불완전하게 구성된 형태들은 구조적 긴장을 불러 일으키고, 파편화된 형상은 존재의 균열과 충돌을 드러낸다. 이는 류경채가 추구한 자연과 조화의 세계와는 상반된 방식이다. 류훈의 작업은 고요한 조화보다는 내적 충돌과 해체의 움직임을 향해 있다. 이는 곧 불완전한 자아를 지닌 현대인의 형상학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그는 본격적인 독립적 조각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전시 전경 (3)
이번 전시는 상반된 사유와 조형의 언어를 병치한다. 시대와 세대, 형식과 철학, 질서와 균열 사이의 다층적 관계를 재구성한다. 전시 제목의 ‘공(空)’은 단순한 비움을 넘어선다. 모든 생성의 가능성이 출발하는 자리를 의미하며, ‘존’은 그 비움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의 흔적이자 현재성의 무게를 상징한다. 류경채의 평면과 조각, 류훈의 입체와 구조물은 ‘공’의 공간 속에서 서로를 비추고 감싸 안는다. 시간과 기억, 육체와 영혼, 질서와 균열 사이에서 두 작가는 조형적 대화를 이어나간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존재란 무엇인가?’ 라는 동일한 질문을 서로 다른 감각과 언어로 밀어붙였다는 데 있다.
류경채, 염원(念願) ’92-6, 1992, 캔버스에 유채, 135x135cm
류경채가 세계와 인간의 조화를 통해 존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조형을 통해 질서를 구축했다면, 류훈은 그 조화가 불가능한 세계에서 존재의 불확실성을 드러내고, 질서를 해체함으로써 존재의 내면을 마주한다. 조형 언어의 방향은 다르지만, 두 작가는 형상 너머의 공백을 응시한다. 그 끝에는 모두 ‘살아 있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
류훈, 공존, 1999, 브론즈, 60x6x60cm
《공(空) – 존》은 단절이 아니라 변형된 계승이다. 세월의 밀도와 삶의 흔적이 응축되어 있다. 침묵 속의 대화이고, 비움 속의 충만함이다. 단순히 형상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 자연과 존재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묻는 예술적 실천임을 일깨운다. 궤적을 따라가며 예술이 어떻게 시간과 세대를 관통해 계승되고 변주되는지를 체험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류훈, 형상, 1993, 브론즈, 52x16x52cm
류훈, 공존, 2011, 테라코타, 44x11x44cm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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