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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완, 자연으로의 귀로

2022. 12. 8 – 12. 28
이수종

분청사기 귀얄문 다완, 높이 6.3 cm, 지름 18 cm

내면의 깊이로 침잠케 하는 다완(茶碗)의 힘은 정신적 공명의 상태로 이끈다는 데에 있다. 정신적 추상을 즐기는 이들에게 다완은 정신적 질료 그 너머에 있다. 태토(胎土)를 노출하고, 기능을 잃지 않되, 미니멀한 형태, 귀얄을 무심하게 그은 듯한 힘 있는 획(Brush Stroke)들, 백토를 덤벙으로 분장한 대담함, 예술적 견지에서 조선의 분청사기는 추상회화와도 결을 같이 한다.

동시에 다른 도자와는 달리 흙을 곱게 수비하지 않고 거칠게 걸러내어 거친 결을 그대로 노출시킨 분청은, 완벽을 향하지 않고, 인간적이며, 자연에 가깝다. 분청사기는 흙 그대로를 보이고, 귀얄이 지나간 흔적을 꾸미지 않으며, 덤벙에서도 백토가 분장되지 않는 부분도 담금질로 메우려 하지 않는다. 작위적인 것을 배제하려는 의지 속에 자연으로 회귀하는 듯하지만 추상적이며, 간결하고, 정신적이며, 예술적이다. 이수종의 다완은 조선의 분청사기의 정신과 예술적 형식에 기반하고 있다.

추상회화의 정신과 자연을 향한 심미적 취향에, 다도(茶道)정신이 조형한 형태가 분청사기로 번조(燔造) 되었다. 다완을 이해하는 데에는 예술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도자는 인간의 역사와 사회,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기물(器物)이기 때문이다. 고려의 청자가 닿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향해 있고, 조선의 백자가 검박한 절제미를 향해 있다면, 분청사기는 보이지 않는 정신과 자연을 향해 있다.

분청사기 귀얄문 다완, 높이 8.5 cm, 지름 17 cm

보이지 않는 정신과 자연을 향한 분청사기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이수종의 분청사기 다완들은 조선의 분청사기와는 다르지만 분청사기의 미감은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분청의 아름다움은 자유분방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숙련을 통한 절제된 표현에 있는 것”, “나의 관심은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흙 안에서 그릇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작가노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무작위’, ‘무심성’, ‘자유분방함’, ’대담한 표현’, ‘추상성’ 이라는 분청사기의 미적특질은 태토와 형태, 장식의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기 위한 절제된 삶과 절제된 예술적 의지가 자연 안에서 형태를 찾아가는 기나긴 시간 안에서 조형되었기에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무심한 획과 거침없는 표현은 절제된 무심, 예술적 의지에서 기인한다. 도자의 결국은 자연에 맡길 수 밖에 없는 번조 과정에서 겸허해진 도예가는 자연에 많은 것을 맡길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손으로 빚은 것이지만 흙, 물, 불, 바람 자연이 만드는 것이다.

분청사기 다완은 시나브로 완결성, 완벽함을 향하지 않고, 자연미를 향하게 된다. 자연을 향해 있는 분청사기 다완은 사유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차를 마시며, 정적(靜寂), 소리 없는 고요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내면의 깊이가 있다. ‘추상과 자연 사이의 심미적 균형을 이룬 분청사기 다완’은 망아(忘我)의 상태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귀로(歸路)에서 ‘저 텅 빈 것’이다.

“저 텅 빈 것(虛室)을 보아라.”
“기(氣)란 공허하여 만물을 기다린다”
莊子, 「인간세」

이지연

Installation view

송아트갤러리
서울시 서초구 서초중앙로 188 아크로비스타 아케이드 L층 B133
02-3482-7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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