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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 연구와 답사, 사유로 잡아낸 빛

갤러리에스피

한진

 

 한진 작가는 오래전부터 ‘묵음(默音)’에 대해 생각해왔다. 철자상 표기돼 있지만 발음되지 않는, 존재하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사라지는 존재. 작가는 그런 것들에 흥미와 애정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무심코 지나치는 현상들과 감각들, 문학, 음악 등에 녹아 있는 묵음과 같은 존재들을 평면 매체를 통해 그림으로 표현해왔다.

 한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와 전문사를 졸업했다. 원앤제이갤러리와 갤러리조선 등에서 일곱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경기도미술관, 스페이스K, 아트선재센터 등 약 30회 이상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는 Kiaf에서 ‘밤은 아직 기다려야 하고 낮은 이미 아니다 Op.2’등 추상 회화들을 선보인다. “떠오른 기억을 토대로 오랜 시간 떠남과 돌아옴의 여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빛이 지형(topographic features)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 빛은 박명(薄明)의 순간까지 여명이 될 수도, 혹은 석양이 될 수도 있는 상태로 존재하기에 빛이 지닌 이중의 속성으로 형성된 이미지를 연작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밤결 속에 머물다. Op.1’에 대해서는 “삶의 어느 시점이 밤의 도열처럼 느껴졌을 때를 표현했다”는 설명이 따라왔다.

 

 한진은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고 세부를 구성하기 위해 현장 답사를 자주 떠난다. 어떤 장소에나 대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감각은 시각 뿐 아니라 청각 등 다른 감각으로도 형성되는데, 이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떠오른 장소와 대상을 직접 찾아가거나 혹은 비슷한 곳이라도 직접 가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사유의 깊이가 생기고, 과거에 쌓인 시간들을 직접 느낄 수 있으며, 문학과 음악 등 그동안 경험했던 다른 분야의 감정을 경유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기면서 작업 세계가 확장됩니다.”

 

 현장답사를 다녀온 후에도 작업에 바로 착수하는 일은 없다. 답사에서 얻은 경험과 여러 자료를 토대로 어떻게 작품을 구성할지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거친다. 작가는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와 보폭을 찾는 일상을 지키고 있다”며 “이런 일상이 작업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장하(長夏)’라는 계절이 있습니다. 여름에 맺힌 열매가 속으로 익어가는 때입니다. 이 시기를 거치지 않으면 풋과일이 되기 때문에 얼마간의 정지된 듯한 시간을 견디며 기다려야 합니다. 순간순간 삶 속에 다가오는 장하의 계절을 감사하며 즐기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대상을 충분히, 섬세히,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느끼기를 멈추지 않는 동적인 힘을 필요로 합니다. 그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만의 속도와 보폭을 인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단기적이자 장기적 목표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는 관객들에게 ‘사유의 시간’을 선사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매 순간 다가오는 존재에 대해 숙고하며 일련의 도약과 일탈, 그리고 수락과도 같은 순간이 교차하는 것을 시각화한다”며 “그림 안에 쌓인 레이어들을 보며 그 순간을 함께 사유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한진, Reverb within Echo Op.1, oil on linen, 24.2×24.2cm, 2023

Artworks

Jin Han, Op.1 _ Lingering in the Waves of a Night Op.1, pencil on paper, 31.8x41cm, 2014

Jin Han, Op.2_Afternoon already gone by but night still yet to come Op.2, oil on linen, 215x197cm, 2023-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