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현은 영상 작품과 퍼포먼스, 설치 작업을 병행하는 작가다. 과학 기술과 대중문화, 역사적 사실이나 사회적 이슈 등 다양한 요소를 한데 조합해 작가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는 국민대 미술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1년부터 지난해 갤러리2에서 연 ‘Crumpled Man’까지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김 작가가 KIAF 서울 2023 하이라이트에 출품하는 신작은 신체와 관련된 기구들을 모아놓은 3D영상 작품이다. 그는 “신체에 직접 붙는 기구들은 잘린 부위를 대체하거나, 부상을 견인하는 의료 목적의 기구, 인간의 한계를 넘는 속도와 힘을 더하는 기구, 성적 쾌락이나 젠더 정체성을 충족시키는 기구, 가상현실로의 이주를 돕는 기구 등 여러 인간의 기구를 쌓아 한 편의 정물화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버려진 기구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헛헛한 느낌을 준다.
김 작가가 미디어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관람자의 경험이다. 그는 이를 ‘게임적 사고’라고 표현한다. 게임처럼 직접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작품에서 보이는 서사구조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는 적극적인 관람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단순히 벽에 걸어 놓는 정물화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정물 영상을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며 “이 작품이 특별한 공간에 놓였을 때 멈춰있던 시간을 움직이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예술가다. 김 작가는 “최근에는 코로나19 이후 변한 예술의 지형도를 집중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많은 시간을 글을 쓰거나 역사를 공부하며 보낸다”고 했다. 최근에는 미래에 우리의 신체가 퇴화한다면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연구하는 중이다. “제가 해석하는 ‘환경’이라는 단어는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입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신체를 탈락시키지 못하고 이런저런 기계를 붙여 질질 끌고 다니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작품의 아이디어 역시 이러한 상상으로 출발했습니다. 나중에 논문도 쓸 겁니다.”
이번 작품에 영감을 준 또다른 요소는 해외여행에서 본 16세기 바니타스 정물화다. 덧없는 세월과 죽음을 표현한 작품들을 본 뒤 허무감에 대한 상념에 빠져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인체를 보조하는 각종 기구들을 통해 현실을 확장하려는 인간의 분투가 한편으로는 서글프고 다른 한편으로는 허망했다”고 했다.
김 작가는 “미디어 영상작품은 여운이 남아야 한다”며 “가지고 있다가 꺼내 볼 수 있는 형식의 작품을 선보였으니 주목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